주민 열정·아이디어로… 장흥역의 부활 오라이~

[도시재생, 경기도형 묘수를 찾다] 7. ‘장흥오라이’의 새로운 이야기

▲ 전문가 팀이 빠진 이후 장흥오라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잇고 있는 오명운 이장(왼쪽)과 장현철 이사가 그들이 장흥조각공원 내 직접 지어 설치한 매점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경기도 양주 장흥역은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7,80년대 인기 MT 장소였다.

하지만 지난 2004년 4월1일 능곡과 의정부를 잇는 서울 외곽 교외선이 운영적자로 중단하면서, 장흥역의 기차 운행도 멈췄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채 간이역 장흥역은 버려졌다.

지난 2012년 양주시 장흥면을 배경으로 진행된 도시재생 프로젝트 ‘장흥오라이(총괄기획 조두호)’의 출발점이다. 과연 장흥역은 옛 영광을 되찾았을까. 지난 9일 그 현장을 찾아가봤다.

주민이 주인되는 도시재생을 추진하다

버려진 장흥역은 황폐해져갔다. 외지인의 발길이 끊기면서 한적하고 비밀스러워진 도시의 장점(?)을 활용한 사람들의 방문으로 ‘불륜의 도시’라는 오명까지 썼다. 쓸모없어진 장흥역 앞 건물들은 개발도 못한 채 청소년의 탈선장소가 됐다. 결국 사람 대신 쓰레기가 넘쳤다. 활기찼던 역전은 음산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도시재생 ‘장흥오라이’ 프로젝트는 이 같은 장흥역을 핵심 공간으로 설정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과 양주시의 후원으로 지난 2011년 첫 걸음을 뗐다. 경기문화재단의 공모사업을 통해 선정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팀 ‘장흥오라이’가 추진했다.

▲ 장흥오라이의 출발점이자 핵심 단계였던 주민 인터뷰

조두호 기획자(수원미술전시관 학예팀장)가 프로듀서를 맡고, 젊은 미술가들과 큐레이터 등으로 팀을 꾸렸다. 조 기획팀장은 앞서 서울문화재단 지원으로 서울 정릉동에서 예술마을가꾸기 프로젝트 ‘3분45초’ 등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한 바 있다.

“일련의 도시재생 사례를 보면서 너무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주민의 바람과 이야기가 빠진 채, 지역과 상관없는 이미지의 벽화들이 거리를 점거하는 등 가시적인 결과물에 치중하는 것이 특히 그렇다. (참여 전문가와 예술가 등의)‘배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특히 그나마도 전문가 집단이 빠져나가면 결국 다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것을 수 차례 목격했다.”(조두호 감독)

장흥오라이팀이 ‘커뮤니티아트’를 강조하고 ‘능동적 주민(주체) 양성’을 목표로 세운 이유다. 이어 장흥오라이 프로젝트는 과거의 영광을 바라는 주민의 바람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장흥오라이 팀은 본격적인 도시재생 계획을 수립하기 전 2011년 10월부터 6개월 간 가가호호 방문해 장흥면 주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설치작가와 화가 등 젊은 예술인들은 지역 곳곳을 탐사하며 어린이부터 노인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커뮤니티 단계를 토대로 공간 재생 대상지를 장흥역으로 설정한다.

 

▲ 무려 15년간 방치돼 있던 장흥역 앞 건물에서 나온 쓰레기

“젊은 사람들이 갑자기 찾아가니 경계하시는 분도 많았죠. 도시개발한다는 사람들이 수다만 떨고 다니니, 하는 일 없어보여서인지 책망하는 어르신도 계셨고요. 하지만 서서히 마음을 열면서 ‘장흥역 기차의 부활’을 염원하는 속내를 쏟아냈죠. 외지인인 저희들도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었어요.”(프로그램 매니저 김새벽)

프로젝트명 ‘장흥오라이’도 주민들의 바람에서 탄생했다. 오라이는 버스안내양이 외쳤던 “오라이”를 통해 추억속으로의 여행을 부르는 의미이자, ‘전부 괜찮아’라는 의미의 영단어 ‘Alright’를 연상케 한다.

 

▲ 폐가였던 역전 건물의 변신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장흥오라이 팀이 주민들의 바람을 담아 장흥역 앞 버려진 공간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지만, 지자체 공무원은 다른 공간의 리모델링을 요구했다. 공무원을 설득하자, 폐건물의 주인으로부터 임대를 허가받아야 했다. ‘만만치 않은 소통’이었다.

“장흥역 앞이 완전 청소년 탈선 장소로 전락했거든. 밤이면 컴컴하고 철길 바로 앞이니 건물 신축이나 개발은 꿈도 못꾸고. 거길 바꾼다니까 으리으리하게 변하는 줄 알고 기대하면서 들렀지. 아니 근데 왠 젊은이들이 건물은 놔두고 그 안에 쓰레기만 길로 어마어마하게 내놓고 있는거야.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변할 줄 몰랐지.”(오명운 장흥면 일영1리 이장)

 

▲ 공간 재생 후 주민 참여로 열린 제막식

주민들의 반응 역시 시큰둥했다. 장흥오라이 팀은 6개월 가량 지역탐사 과정을 거친 후 장흥역 앞 3개 폐건물을 임대해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10여 년간 건물 안에 방치돼 있어 쓰레기를 모두 꺼내는 작업이 좋아보일리 없었다.

그렇게 지난 2012년 6월 폐허였던 장흥역 앞 3개 건물은 ‘역전다방’, ‘도깨비꽁방’, ‘장수사진관’ 등 마을의 사랑방을 자처하는 소통 창구이자 문화 아지트로 재탄생했다. 지상파 방송에도 노출되고, 찾아오는 관광객도 늘고, 공간을 이용하는 주민도 생겼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의미있는 성공 포인트는 공간의 변화 아닌, 주민의 적극적 참여다.

이와 관련 조 팀장은 “장흥오라이의 출발은 주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해 지속발전가능한 도시재생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간을 리모델링할 때부터 이장과 부녀회 등을 적극 참여시키며 향후 운영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흥오라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 팀이 빠진 이후 주민들이 출범시킨 장흥대박협동조합

꿈꾸는 주민의 탄생

“우리가 아직 ‘장흥오라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어. ‘와라, 우리가 최고다, 올라잇’ 등 의미가 좋잖아. 그거 우리가 살리고 싶거든. 기자 양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으로 우리를 취재한다고 했지. 그럼 딱이야. 우리 장흥오라이는 없어지지 않을테니까. 우리가 딱이지 뭐!”

오명운 이장(55)은 장담했다. 그는 지금 ‘장흥대박협동조합’의 이사장이자 마을기업 ‘장흥오라이’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장흥오라이 프로젝트 진행 당시 부정적인 방관자였던 오 이장은 “집보다 더 큰 쓰레기를 치우고 전직 목수였던 경력을 살려 공방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면서 장흥오라이 팀의 일원이 됐다. 그는 지역 후배인 건물 주인을 함께 설득해 3년 무상 임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마을기업의 활동 계획을 설명하는 장현철 기획이사

“지역 후배니까 평생 무상임대해줄거라고 장담했는데, 역시 조 팀장 말대로 철수를 요구하더라고. 임대를 주겠다나. 뭐라 할 수 없지. 개인 재산이니까. 섭섭했는데 오히려 잘됐어. 우리끼리 더 단단해지고 다시 일을 벌일 수 있는 계기가 됐어.”

2012년 장흥오라이 팀이 조성한 공간과 프로그램 등을 모두 이관받은 오 이장은 2013년 경기문화재단에 우리동네프로젝트에 지원해 500만원을 따냈다. 전기세 내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소액이었지만 목공 DIY, 우쿨렐레 강습, 사진촬영 등을 진행했다. 그 해 강습생들이 기차 모형을 만들어 장흥역 앞에 설치하고, 역전다방에서는 주민이 기타치고 노래하며, 역 앞에서 마을 주민이 모두 모여 축제도 열었다.

하지만 공간이 점차 양성화되면서 믿었던 건물주로부터 철수를 요청받는다. 시청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고. 결국 건물을 폐쇄하고 임시 콘테이너에 사무실을 꾸렸다. 문화재단과 외부 전문가, 시청 등의 모든 지원이 끊긴 2014년의 일이다.

“지자체가 좀 혼나야 해. 그런데 마침 행정자치부에서 ‘돈 되는 사업도 해보라’고 연락이 왔어. 자신 있었거든. 지원없이 해봤잖아. 그래서 장흥오라이 운영하는 사람들하고 마을 동호회를 주축으로 마을 기업을 시작했어.”

 

▲ 장흥오라이가 곧 입주해 주민센터로 활용할 장흥의 한 모텔 공사현장

오 이장은 당시 이삿짐을 꾸렸던 장씨(장현철장흥대박 협동조합 기획이사)를 붙잡았다. 오 이장과 동갑내기인 장 이사는 전직 컴퓨터프로그래머로, 장흥오라이 공간 폐쇄 전 역전다방에서 기타치며 각종 프로그램 기획 운영에 참여한 주민이다.

“꾐에 넘어간” 장 이사 등이 합류한 장흥오라이는 17명의 조합원으로 출발한 ‘장흥대박협동조합’에 이어, 2015년 마을기업을 설립했다. 올해 양주의 한 모텔 건물을 리모델링한 주민생활문화센터의 운영팀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들은 앞서 장흥시시설관리공단과 협약을 맺고 장흥조각공원 내 매점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주말이면 평균 150만원의 수익을 창출하고, 관광객 대상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경영능력을 키웠다. 타 지자체 견학 등 연구조사를 통해 사계절 맞춤형 지역 축제도 계획 중이다.

“곧 오픈할 ‘777레지던스’(리모델링 중인 양주 모텔)로 이주해서 제대로 된 사업을 해봐야지. 우린 가능해. 전국에서 우리처럼 마을 사람들이 먼저 뭉쳐서 마을기업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역제안하는 사례는 없거든.”

목표로 ‘전국의 매출 1위 마을기업’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앞으로 추진할 다양한 아이디어는 전문가보다 훨씬 설득력있게 들렸다.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은 그들의 꿈꾸는 듯한 눈빛에 어려 있었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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