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운(官運) 하면 고건(77)씨다. 1961년에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 때마침 박정희 정권이 등장하던 때다. 유례없는 영남(嶺南) 독주 시대의 서막이기도 했다. 호남에 대한 견제와 핍박이 혹독했다. 하지만, 호남 출신인 그는 승승장구했다. 강원도 부지사(1973년), 전라남도지사(1975년)로 임명됐다. 1979년에는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까지 했다. 권력자의 최측근 자리였다. 바로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됐다. 권력은 끝났고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잘 나갔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교통부 장관과 농수산부 장관, 내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노태우 정부에게는 관선 서울시장직을 받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도 두 번이나 했다. 한번은 김영삼 정부가, 또 한 번은 노무현 정부가 준 선물이었다. 관운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 하필 국무총리가 그였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관운(관리로 출세하도록 타고난 복)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과거 인터뷰로 남아 있다. “나는 특정 정권에 충성한 일이 없다. 행정 전문가로서 나에게 일이 맡겨지면 국민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부든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징발해 갔다.” 실제로 그는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렸다. 또한 그만큼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춘 이도 드물다. 고건의 관운에는 이처럼 준비된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호남이라는 출신배경까지 생략할 수는 없다. 역대 모든 영남정권엔 숙제가 있었다. 호남 민심 끌어안기다. 그때마다 권력의 구미에 들어맞는 적임자가 고건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만 그가 고위직에 임명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재미있다-이때의 서울시장은 선출직이었다-. 그의 출세를 두고 ‘역(逆)지역주의 산물’이란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경기도가 호남처럼 됐다. 선거를 위해 배려해야 할 지역이 됐다. 또 그런 정치 계절이 온 모양이다. 경기도 출신의 원유철(평택갑)ㆍ이종걸(안양만안)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다. 좋든 싫든 둘에게는 ‘경기도 배려’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4선인 이들에겐 자존심 상할 소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탓하고 있기보다는 득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현명하다. ▶그 옛날 호남 배려는 ‘호남의 거물’ 고건을 만들었다. 지금의 경기도 배려도 언젠가 ‘경기도 거물’ 누군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 경기도 정치판에서 나도는 ‘△△△ 대망론’ㆍ‘○○○대망론’도 따지고 보면 경기도 배려라는 정치적 한계부터 역으로 시작되는 논리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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