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자화상

모든 사람들이 그림 능력이 있어 각자 자화상을 그려낸다면 어떻게 될까? 입사원서에 붙인 사진과 면접장의 인물 사이의 크고 작은 차이를 상기하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왜곡과 변형이 판치고, 자화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헛갈리는 사태가 만연하여 닮은 꼴 자화상 찾기 대회가 열리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리라. 이 같은 상상은 비상시에 대처하는 우리네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비롯된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우리들의 위기 앞의 처세 말이다.

오늘(7월 16일) 개막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준비해 오면서 영화제 조직은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해야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기치 않은 상황 전개의 와중에 영화제의 일정이 놓여진 때문이다.

쟁점들을 정리하고, 쟁점마다 최우선의 가치를 찾아내면 답은 분명해지는데, 이게 또 말처럼 쉽지 않다. 영화제와 연관을 갖는 복잡다단한 관계들 속에서의 입장정리에 난해한 방정식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동호흡기 증후군. 이름도 그렇거니와 중동 지역에서 선행의 사태가 발생했었다는 뉴스가 있긴 했었지? 그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가물한 먼 나라의 신종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시험하면서 한탄 섞인 숱한 성찰의 시간을 남겼다.

우리 국민들에게 익숙한 가치 척도나 상식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제 몸 지키는 데 혈안이 되어 문을 걸어 잠궜다.

각 급 학교는 휴업사태로 어수선했고, 거리는 한 때 유령도시의 그것처럼 텅 비었다. 외출하지 않으니 쌈짓돈 굳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돈이 돌지 않으니 그날 벌어 사는 소시민들의 고통은 말해 뭣하랴.

메르스가 남긴 상흔이 공포의 실체감으로 드러나자 사태로부터의 탈출이 절박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증폭됐다. 국민들은 점점 피로해졌고, 법석을 떨었던 언론매체들도 자중의 분위기로 돌아섰다. 7월 3일에 개막된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도 예정대로 열려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저러한 과정을 거치다보면 세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이 사태 역시 기억 속에 묻힐 것이다. 숱한 역사들이 증명한다. 서해 페리호, 성수대교, 삼풍, 대구 지하철, 세월호 등의 사례들이 보여준 것처럼.

이쯤에서 불쾌하고 아픈 기억은 그만 접는 게 좋겠다. 그보다 소 잃었지만 외양간을 잘 고치기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이 필요하리라.

사태 발전에서 야기된 문제점들은 누누이 지적되었으므로 해결점도 명확해졌을 터다. 사회 성원인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을 다하며 공동체 의식을 실천하는 일이 더해진다면 이후엔 다시 소 잃는 손해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타파에 우리 영화제가 의미 있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500여 스태프와 자원활동가들이 땀 흘리고 있다. 부천시의 관계 공무원들도 열성을 보태고 있으며, 출품 관계 영화인들, 세계 각지의 게스트들, 행사 관계자들이 제 할 일에 열심이다.

7월 16일 부천체육관 개막식부터 11일간 열리는 영화축제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밝은 얼굴을 자화상으로 남기고 싶어 할 정도로 말이다.

김영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