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두 나눔 이야기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 메르스로 인한 두려움까지 겹쳐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이제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어떤 일이나 상황의 진행 방향이나 결과를 알 수 없으며, 그래서 언제든지 나와 우리 가족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얼마나 큰 심리적, 사회적 악영향으로 나타나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모 증권회사와의 공동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경험했던 일이 새삼 생각난다.

회사가 운영하던 각종 주식과 펀드기금의 통합운영을 위해 흩어져 있던 계좌를 새로운 단일 계좌로 이관, 정리하는 고객들을 독려하기 위해 ‘항공사 마일리지’와 ‘사랑의 열매 기부’를 각각 인센티브로 내걸었던 행사다.

당시, 이 캠페인을 제안받고 담당자를 만나 “이렇게 하면 누가 기부를 선택하겠느냐. 당연히 항공사 마일리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3개월 뒤, 캠페인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담당자로부터 “한 번 들어와 보실래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와서”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사무실을 찾았다. 담당자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우리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알려준 캠페인의 결과는 놀랍게도 ‘항공사 마일리지’와 ‘사랑의 열매 기부’가 거의 절반씩 나왔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주식을 사고파는 소위 ‘데이 트레이딩’을 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한 ‘항공사 마일리지’를 선택한 것에 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식에 투자하는 고객들은 거의 예외 없이 타인을 위한 ‘나눔’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자료를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매년, 국제기구에서 발표하는 ‘행복지수’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등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유난히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모두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나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삶의 질’은 우리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높고도 튼튼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듣고 또 만났던 ‘두 나눔’ 이야기는 우리의 행복지수가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되새겨볼 만하다.

대구에서 고액기부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겠다며 스스로 모금회를 찾은 30대 대학생의 나눔은 우선 그 규모가 놀랍고도 대견하다.

주중에는 학교 공부로, 그리고 주말이면 홍콩의 투자자문회사 임원으로 몸이 두 개라도 견디기 어려운 바쁜 시간 속에서도 연간 백 여권을 책을 읽으며 돈 보다 더 귀한 삶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 젊은이가 약정한 3억6천만원은 대구경북지역 360여명 고등학생에게 배움의 길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미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이 젊은이가 그 재능과 따뜻한 마음을 계속 이어가 세계적인 투자자이며 나눔의 상징인 ‘워렌 퍼핏’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또 한 분, 인천 계양의 한 기부자 사연은 우리네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북에서 피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과 갖은 고생을 극복하고 기업을 일궈낸 여성기업인이다.

지병으로 이제 삶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꺼이 받아주고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 준 인천과 계양을 위해 그동안 소리 없이 나눔을 실천해 온 삶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그 긴 시간동안 나눔을 이어올 수 있었던 첫걸음은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 받은 첫 월급에서 기부금을 떼면서부터였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 작은 시작이 수 십 년을 이어 온 ‘나눔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밝혀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이렇게 오늘도 우리 주위에서는 소리 없이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지수를 높여가는 이웃들이 있다. 이제 당신 차례다.

전흥윤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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