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태완이법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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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의 한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당시 6세)군이 누군가의 황산테러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49일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김군이 이웃 주민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수사당국은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용의자를 불기소 처분했다.

태완군의 부모는 공소시효 만료를 사흘 앞둔 지난해 7월 4일 검찰 수사가 적절했는지 따져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하지만 지난 2월 기각됐다. 태완군 부모는 재정신청 기각에 불복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최근 이를 기각하며 사건을 종결했다.

지난 2007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지만 태완군 사건은 그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 소급적용되지 않았다. 사건을 지켜 본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의원이 지난 2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명 ‘태완이법’이다. 국회는 지난 24일 ‘고의로 사람을 살해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완전히 폐지되게 됐다. 49일간의 사투 끝에 숨진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했던 한 부모의 16년간 이어진 끈질기고 처절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태완이법’은 태완군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음 아고라에선 태완군 사건 등에도 소급적용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반인륜적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잡히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됐다. 여론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 반인륜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 나라들이 많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전범을 아직도 추적하고 있다.

대부분 90세가 넘은 노인이 됐지만, 모살(謀殺) 등 중대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독일 사법제도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미국도 대다수 주에서 공금횡령이나 사형ㆍ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지면서 장기미제 살인사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은 2010∼2014년 기준으로 연평균 3.2건이다. 매년 3건씩 수사기관의 손을 떠났을 사건이 처리대상 사건으로 쌓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기관의 부담이 커지겠지만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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