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부자가 3代를 못가는 이유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며 배우인 제인 버킨이 자신의 이름을 붙인 ‘에르메스 버킨백’에서 ‘버킨’을 삭제해달라고 제조회사에 요구하여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미 1997년 버킨과 상표명 등록이 합의된 상태이기 때문에 에르메스 측으로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버킨이 자신의 이름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나일 악어 양식장에서 1년에 4만3천마리가 에르메스의 가방용 가죽을 위해 죽어나가는데 그 살해방법이 너무 잔인한 때문이라고 한다.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티에르 에르메스 3세에 의해 1837년 창업되었으니까 무려 178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처음에는 왕실과 귀족의 말 안장을 제작 납품하는 것으로 출발했으나 자동차가 등장함으로써 말안장 대신 자동차 시트를 만들었고 이어 여성용 가방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최고 2억원까지 하는 세계에서 가장 고가의 명품이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기업은 178년의 역사, 6대에 걸친 가족경영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에르메스의 ‘깔레쉬’라는 상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마부가 마차를 모는 마부석이 비어있는 마차-그러니까 비어있는 자리가 바로 고객, 즉 소비자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객이 주인’이라는 기업정신이다.

형제나 부자간의 지분, 자식들간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오직 소비자만 생각하기 때문에 경영구조를 둘러싼 싸움도 없고 ‘상품의 질’, 그 하나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가방의 명품으로 세계적 각광을 받는 ‘구치(Gucci)’는 1921년에 이태리 피렌체에서 구치오 구치에 의해 창업되었으나 2세, 3세에 이르러 자식들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살인까지 벌어진 끝에 결국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1993년 경영권을 넘기는 비극을 맞았다.

그러니까 지금 ‘구치’는 이름만 ‘구치’이지 오너가 아닌 것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가족 지배구조 다툼에 에너지를 탕진하는 기업은 이처럼 100년을 넘기지 못한다.

특별히 창업자의 권위있는 유언으로 가족경영이 100년을 넘기는 장수 기업도 있다. 25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제1의 금융재벌 로스차일드가 그것이다.

유대계인 로스차일드가의 3세 안젤름은 유언을 남겼는데 “서로간에 분쟁이나 불화를 일으키지 말고, 재판을 하지 말며……. 서로를 감싸주고 악한 감정에 빠지지 않아야한다. 가족간의 분쟁을 야기하는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할 경우, 나의 유언에 도전하는 것으로 처벌 받는다…….”

이와 같은 로스차일드의 유언은 8대째 철저히 지켜져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전유럽에 퍼져 국제금융계를 장악하는 도이치뱅크, HSBC, 노바스코샤를 비롯해 전세계의 와인 업계까지 장악, 그 자산규모가 미국 GDP의 절반에 가까운 부를 이루게 했다.

그러나 가족 갈등이나 환경과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망하고 마는데 한 통계에 의하면 창업주의 2대 성공률은 30%로 줄어들고 3대의 성공률은 12%에 불과하다. 4대 성공률은 고작 3%다.

물론 ‘마부석을 빈 자리’로 남겨둔 에르메스와 같은 경영, 사회환원의 기업윤리(경주 최부자집이나 미국의 록펠러 그리고 빌게이츠와 같은)에 충실한 기업들은 100년을 넘긴다.

이번 전국민의 비난을 뜨겁게 받고 있는 롯데가의 추한 가족싸움을 보면서, 그리고 아직도 계속되는 11개 재벌그룹의 가족 분쟁을 보면서 부디 우리나라에서도 100년을 넘고 세기를 넘어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기업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변평섭 전 세종시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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