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경기민속문화의 해, 전래놀이 전승 현장을 찾아서
경쟁이 일상화 된 시대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쫓고 쫓기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그렇다보니 여유가 주어지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각자도생을 자처한다. 눈과 손은 여지없이 텔레비전 리모컨 혹은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향해 있다. 현대인이 선택한 도피처다. 그러나 관계가 생략된 도피는 디지털 피로감만 쌓일 뿐,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는다. 대안은 무엇일까. 관계를 기반으로 ‘경쟁과 상생’을 추구하는 전래놀이를 제안할 만 하다. ‘2015 경기민속문화의 해’를 맞아 우리나라 전래놀이 전승 현장을 찾아가봤다.
10년 이상 젊어지기, 추억 공유하기, 체력 단련 등 전래놀이 효과 눈길
“청팀 이겨라! 홍팀 이겨라!”, “빨리 빨리, 아이고!”, “아니야! 이리와! 여기야!”
무섭게 느껴질 만큼 뙤약볕이 따가웠던 어느 날. 그것보다 더 뜨거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고즈넉한 한여름 시골 마을을 갈랐다. 지난 3일 이천 도니울(이천시 대월면 도리리) 마을의 풍경이다. 이날 도니울 마을에서는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로 잠정 연기됐던 ㈔한국전래놀이보존회의 민속놀이 프로그램 ‘우리동네 놀이선생님’이 동네 어르신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졌다.
한국전래놀이보존회는 한국의 잊혀진 전래놀이를 발굴하고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놀이를 연구 개발 및 보급하는 민간단체다. 이들이 진행하는 ‘우리동네 놀이선생님’은 경기문화재단 후원으로 문화혜택이 적은 문화사각지역에 놀이 선생님이 직접 찾아가 현대화한 전래놀이를 알려주고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경기도내 미혼모 거점기관과 파주시 DMZ캠프그리브스, 어린이집 등 연령층을 가리지 않고 문화사각지역을 찾고 있다. 참여 연령층에 따라 맞춤형 전래놀이를 준비할 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다. 활쏘기, 연 만들기, 탈 만들기, 주령구, 윷놀이, 비석치기 등이다.
이날 장수마을인 이천 도니울에서 30여 명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래놀이는 ‘얼레공놀이’, ‘팽이돌리기’, ‘단심줄 대동놀이’ 등이었다.
이 중 얼레공놀이는 마상격구를 현대화한 것이다. 장치기의 원조격인 마상격구는 편을 갈라 두 팀이 말을 타고 달리며 짚으로 만든 공을 상대팀에 넣어 승점을 따지는, 마치 말을 타고 벌이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총포가 발달하자 말의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장치기로 지상화됐다.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과 이름으로 즐겼으나, 그마저도 사라진 현실이다.
이날 어르신들이 온몸으로 뛰며 즐긴 얼레공놀이는 여러명이 조금만 여유있는 공간이 주어지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현대화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다섯 명씩 짝을 지어 두개 팀이 공을 골려 반환점을 돌아온 후 바통을 이어 받은 사람은 국자로 쌀알을 한톨도 흘리지 않고 옮겨 담는 것을 반복, 각 팀의 모든 선수가 빨리 결승선에 들어오고 쌀을 많이 모은 팀을 승자로 정하는 방식이다.
응원열기는 뜨거웠다. 어디서 튀어나온 승부욕인지, 가만히 앉아 놀이 방법을 조용히 듣던 어르신들이 팀을 구분해 옷을 나눠 입는 순간부터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된 첫 번째 경기. 결승선에 더 빨리 골인한 청팀이 두 번째 경기에서는 쌀을 더 많이 옮긴 홍팀이 각각 1승을 차지했다. 게임 도중 규칙을 어겨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도 모두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재승부까지 벌여 더 빨리 들어오고 쌀도 많이 옮긴 청팀이 승리를 확정지었다.
송인규(73) 도니울 경로회장은 “개인적으로 마음도 편해지고 감회가 깊다”며 “놀이를 즐기는 동네사람들을 보니 단합되는 것 같고,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왔다”고 기뻐했다.
이어 벌어진 경기는 팽이치기. 김순희 한국전래놀이보존회 이사의 설명을 들은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아 개성만점 팽이를 만든 후 게임에 참여했다. 팔순의 기력이라 상상치 못할 집중력과 체력을 보여준 정옥순 할머니를 비롯해 남녀노소 뒤엉켜 팽이를 돌리며 웃음폭탄을 터트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마승선 사무장은 “이천 도니울 마을은 장수마을로 고령 노인이 많은데 이 어르신들이 선생님으로서 농촌체험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작 이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오늘 전래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동네 놀이선생님의 대미는 단심줄 대동놀이가 장식했다. 단심봉에 매여 있는 색색의 줄을 참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리를 교차해 줄을 역는 전통놀이다. 과거에는 풍년을 기워하며 마을의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자주 볼 수 있었던 대표적 전래놀이지만, 현대화로 잊혀져 간 우리네 소중한 문화이기도 하다.
이날 단심줄 놀이까지 모두 즐긴 이정이(63) 부녀회장은 “‘지지배’때 하고선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하는 민속놀이인데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체력도 단련하고 협동심도 키우고 추억을 공유하면서 마음까지 젊어지는 것 같다”고 전래놀이 예찬론을 폈다.
놀이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공동체의 일원이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니 당연하다. 그런 놀이가 농경사회가 급격한 산업화로 사라진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함께 사라져가는 배려와 협동, 그리고 공동체. 이날 도니울 마을에서 펼쳐진 전래놀이 보급 현장은 단순히 잊혀진 전통문화 되살리기에서 나아가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생존법을 보여줬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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