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억은 변하고 사라질까…'망각'에 관한 고찰

다우어 드라이스마 교수의 신간 '망각'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우리는 망각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감각기관은 감각적인 기억을 저장하게끔 돼 있지만, 계속되는 경험이 없으면 이내 사라진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스펄링이 1960년대 시행한 기억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스펄링은 피실험자에게 0.05초 동안 4개씩 석 줄로 나열한 12개의 알파벳을 보여주고 나서 첫 번째나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줄의 알파벳을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피실험자는 평균적으로 해당 줄의 4개 알파벳 중 3개를 말했다. 매우 짧은 순간에 봤지만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는 셈이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다른 줄에 있는 알파벳 순서를 물어보자 대부분 피실험자가 이야기하지 못했다.

경험에 의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간밤에 꾼 꿈은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이내 잊어버리고,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심지어 오랜 기간 알아온 사람이더라도 10년 전 모습은 가물가물하다.

이처럼 망각은 기억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지만, 망각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생각해보면 기억하는 법에 대한 훈련은 있어도 망각에 관한 훈련은 없다.

하지만 다우어 드라이스마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교수는 저서 '망각: 우리의 기억은 왜 끊임없이 변하고 또 사라질까'에서 "기억에 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은 바로 망각"이라고 지적했다.

책에 따르면 망각은 우리가 기억 가운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좋아하는 기억은 '안전한 코드'로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기억은 수정·삭제하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나 사람을 사진으로 찍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것 역시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기억은 잊힐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억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는 "기억을 가꿀 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사랑과 기억하고자 쏟는 헌신"이라고 말한다.

에코리브르. 388쪽. 1만7천500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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