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할머니들의 이름엔 끝에 ‘자(子)’자가 많이 들어갔다. 순자, 명자, 숙자, 정자, 미자, 경자 등등. 이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여성들이 아끼꼬, 미치꼬, 나미꼬, 아사꼬 등 ‘꼬(子)’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아서 이를 따라 지은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싶어 한 것은 아니다. 일본이 우리 성과 이름을 없애고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창씨개명’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완전히 일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우리 말과 글의 사용은 물론 우리 역사의 연구와 교육도 금지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없애버리려는 의도로 피의 전통을 의미하는 고유한 성(姓)까지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그때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으며 수많은 ‘~자’가 탄생했다. 슬픈 역사의 잔재다.
창씨개명은 사람 이름뿐 아니라 우리 산야의 수많은 풀ㆍ꽃ㆍ나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큰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 등 가녀리고 예쁜 풀꽃에 이런 저속한 이름들을 붙였다. 큰개불알꽃은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이 이름을 붙인 이는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로 그는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이누노후구리, 犬陰囊)을 닮았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며느리밑씻개는 마마코노시리누구이(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했다. ‘의붓자식의 밑씻개’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의붓자식’이 ‘며느리’로 바뀐 경우다.
오랫동안 불러온 우리 고유의 이름이 있건만 식민지 수탈의 일환으로 우리 산야의 식물을 채집해 일본식 저급한 이름을 붙이면서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 남은 일제 잔재도 심각하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 ‘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인데 이 가운데 일본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이 327종이나 된다.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해온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이 식물의 한글 이름이 기록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일일이 조사, 최근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의 내력을 찾아 책으로 펴냈다. 참으로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참에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우리 풀꽃에 우리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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