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 ‘옆집 아이 보고서’
“더구나 지금 내 낡은 컴퓨터와 감색 옷장 위에는 오래된 먼지가 뿌옇게 얹혔습니다.
나는 그 먼지들을 일부러 닦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속에서 지내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시간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서 멈춰져 있습니다. 다들 제 생일을 맞은 듯 온 도시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단, 몇 사람만 빼고 말입니다. 나는 나를 그 시간에 가두었습니다.”
청소년소설 <옆집 아이 보고서> (한우리 문학 刊) 속 ‘순희’의 진술서 한 구절이다. 그냥 일반적인 진술서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관념적이다. 염세적이기도 하다. 유서처럼 써내려간 이 진술서를 시작으로 순희는 학교를 떠나 스스로를 집에 가둔다.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와 함께. 옆집>
<옆집 아이 보고서> 는 독특한 전개의 청소년 문학이다. 소설의 기본 뼈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은 진술서와 반성문, 관찰일지의 양식을 따른다.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채 퇴학당할 위기에 놓인 두 명의 고등학생 지순희와 박무민이 주인공이다. 옆집>
순희는 위태로운 소녀다. 내면도 주변도 모두 위태롭다. ‘은둔형 외톨이’. 사회가 순희에게 사회적으로 부여한 병명이다. 순희는 알 수 없는 사유로 학교를 나왔고, 이유도 모른 채 스스로를 방에 가뒀다. 삶과 일상, 미래 모두 순희에게 허무하고 무의미하다.
반면, 무민은 명확하다. 특별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어떠한 삶의 구체성은 있다. 학교 소각장에서 담배 피다 걸린 것이 화근이 돼 퇴학 위기에 몰렸다. 꼭 담배가 아니라고 해도 여러 말썽을 많이 피웠다. 학교가 필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퇴학은 찜찜하다.
담임은 그런 무민에게 다소 엉뚱한 제안을 한다. 또 다른 제자 순희가 다시 학교에 나올 수 있게 한다면 퇴학은 없던 일도 해주겠다는 것. 무민의 집이 순희의 집 바로 옆이라는 사실이 담임에게 단서를 줬다.
담임은 순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하루 두 차례 관찰보고서를 올리는 조건을 달았다. 반복된 자살시도로 자신의 삶을 끝내려는 순희에 대한 감시망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순희 구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옆집 아이 보고서> 은 무겁다. 특별한 작전(?)을 전개하는 부분은 필연적으로 유쾌함을 유발하지만 소설 속에 내재한 시대의 초상은 우울하고 힘겹다. 특히, 순희의 은유는 그 시기,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고민하는 또래의 슬픔을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옆집>
시간의 순서에 따라 반성문과 진술서, 관찰일기가 반복되는 구조지만 지루함은 덜하다. 추리 요소가 가미된 탓이다. ‘심리부검’처럼 진술과 관찰을 통해 ‘순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추적해 나간다.
자살한 동생의 동기를 추적하며, 우리 사회 경쟁과 소외를 고발했던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 과 비슷한 분위기다. 다만, 극단적이지 않아 조금은 더 부드럽게 읽힌다. <제4회 한우리 청소년 문학> 수상작으로 최고나 작가가 썼다. 값 1만원. 제4회> 우아한>
박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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