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여초(女超)’ 사회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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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男尊女卑)’란 단어가 있었다. 남성의 권리나 지위 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고 여성을 업신여기는 관행이다. 조선시대에 유교 이념이 널리 퍼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특히 심했다.

당시 딸을 가진 어버이는 가사에서부터 모든 범절을 가르치면서 시부모 공대하는 법, 남편 섬기는 일 등을 일러줄 때 칠거지악(七去之惡)ㆍ삼종지의(三從之義)ㆍ부창부수(夫唱婦隨)ㆍ여필종부(女必從夫) 등의 말들을 강조하며 남성을 존대하고 여성 자신은 비하하도록 했다.

이러한 의식은 시대가 변하면서 남아선호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가부장적 전통가족제도가 낳은 것으로 가계 계승이 부부중심이 아닌, 부자중심으로 되면서 남자를 늘 우위에 뒀다. 결혼한 여성은 남아출산을 강요 당했으며, 아들을 출산하지 못할 경우 쫓겨나거나 이혼을 당했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견고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남아를 더욱 선호하게 됐다. 이로 인해 1990년대엔 남성 출생성비는 최고 116.5까지 올라갔다. 자연상태에서 남녀 성비는 104대 100 정도다. 남녀 성비가 116.5대 100을 기록했다는 것은 뱃속 아이가 여성인 경우 낙태를 선택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남성 성비를 높였다는 의미다.

오늘날 남아선호사상은 거의 없어졌다. 아이를 한명만 낳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남아보다는 오히려 여아를 선호하고 있다. ‘남존여비’의 뜻도 달라졌다. ‘남자의 존재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다’라고. 우스갯소리지만 여자의 위상이 높아진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반세기 동안 ‘남초’(男超)를 유지했던 우리 사회가 처음으로 ‘여초’(女超) 사회로 전환됐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말 여성 인구는 2천571만5천796명을 기록해 남성(2천571만5천304명)보다 492명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7월 말엔 남자보다 2천645명이 많아졌고, 8월에는 남녀 격차가 4천804명으로 더욱 벌어졌다.

남녀 비율이 역전된 것은 평균 수명이 늘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출생 성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기 때문에 노인 인구 비중이 높은 사회는 여초 인구 구조를 갖는다. 앞으로 여초 현상은 더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요한 건 남자가 많은가, 여자가 많은가가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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