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이산가족 상봉 소식에 백발의 신청자들 눈가 촉촉 주소 등 희미해진 기억 더듬으며 “생사라도 확인” 간절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이번엔 꼭 만날 수 있겠죠”
8일 오후 2시께 서울시 중구의 대한적십자사 본부 별관 1층 민원실은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로 북적였다.
이런 가운데 민원실 입구 한켠에서 백발의 노인이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인천 부평구에 살고 있다는 최삼배 옹(74)은 신청서를 받고도 작성하지 못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
최 옹은 6ㆍ25 전쟁 당시 헤어진 여동생의 이름과 나이만 기억할 뿐 살던 주소 등 대부분의 기억이 희미해져 그동안 한 번도 신청하지 못하다 혹시나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적십자사를 찾았다고 했다.
걱정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다는 최 옹은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고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이라고 동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최 옹은 북한에 있던 외가에 살다 지난 1951년 1·4후퇴 때 여동생을 외가에 남겨두고 가족들과 함께 남한으로 온 사이 여동생과 헤어졌다. 그 이후로 여동생은 항상 최 옹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내 동생 이름은 상옥이지만 가족들끼리는 ‘영자’라고 불렀어”라며 최 옹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또 신청자들 사이에서 연신 눈가를 훔치던 구정회 할머니(81)도 그리운 가족을 생각하며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구 할머니는 “오빠가 북한에서 교육을 받으러 간 사이 6ㆍ25전쟁이 발발했다”면서 “잠깐인 줄 알았는데 그 때의 헤어짐이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 몰랐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 3시께 이곳을 찾은 김성진 옹(78·부천 원미구)도 청각장애 5급을 앓고 있을 만큼 불편한 몸이지만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부천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김 옹의 두 손에는 아버지가 직접 적었다는 빛바랜 호적등본이 쥐어져 있었다.
5년 전 처음 상봉을 신청했던 김 옹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신청이다. 김 옹은 “지난 1950년 6ㆍ25전쟁 때 가족들은 모두 춘천으로 월남했지만 북에 삼촌과 고모들이 남았다”면서 “이번에는 부디 가족들의 생사만이라도 확인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해 2월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1년8개월 만에 재개됐다. 남북은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고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양측은 다음달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 면회소에서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이 참가하는 상봉 행사를 하기로 했다. 이어 우리 측 생사 확인 의뢰 대상자는 250명, 북측은 200명으로 합의했으며, 남북은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 1~2명의 가족이 동행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산가족 상봉의 세부 내용을 확정함에 따라 현재 대상자 선정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훈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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