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리를 해야겠어”. 모 대기업에 몸을 담고 있는 친구녀석의 말이다. “20년 직장생활하면서 단 한 번도 요리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언제부터인가 요리를 못하는(안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와”하는 녀석의 약간 푸념 섞인 읊조림에 문득 ‘나는?’하고 자신에게 되물어 봤다.
그러면서 ‘참, 다행이다’하고 혼자 씁쓸한 웃음을 지어 봤다. 2년 남짓한 대학 자취생활에 그나마 내 손으로 해 보겠다는 철없던 각오(?)로 총각김치, 김장김치까지는 담가 본 경험이 있어 나름 요리를 하면 ‘맛없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뜬금없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창 요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더니 어느 틈에 요즘에는 TV를 틀면 ‘남자들의 요리’ 프로그램이 거의 전 채널을 망라할 정도다. 심지어는 TV를 뛰어넘어 화면도 볼 수 없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남자 요리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요리 시연은 가히 국경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을 모르면 여성 직원들은 물론이고 아내와도 대화가 안될 정도다.
▶남자 세계만을 고집하는 이들에게 이런 대세는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불현듯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사내새끼가 부엌을 들락거리면 고추 떨어져”라며 요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아마도 할머니 시대에는 남녀간의 역할과 영역이 분명하게 갈려져 있었고,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생전에 할머니가 들려주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남자의 권위는 여자 위의 군림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내가 나름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봄이었다. 아내를 앞장세운 장터에서 오이 20개와 열무 두 단을 사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를 담갔다. 남은 쪽파와 부추로 (나는) 과감히 파김치와 부추김치에 도전했다. 포인트는 액젓이었고 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김치라는 요리는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감동을 줬다. 감동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팁은 사랑이다. 남자들이여 요리를 하는데 주저하지 마라.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