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을 읽다 외국인주민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에 눈길이 멈췄다. 올 1월 기준으로 주민등록인구의 3.4%에 달하는 174만 명이 외국인 주민이다.
이 숫자는 2006년 54만 명과 비교하면 10년도 안된 기간에 3배가 넘게 증가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다인종화가 얼마나 가속화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올해 초 인천적십자에 울먹이며 서툰 한국말로 도움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살짜리 어린 딸에게 먹일 분유값 조차 없는 막막한 실정이라며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도움을 청해 온 것이다. 심사를 거쳐 긴급생계지원금을 지원하고 한 달간 모금 운동을 펴 모아진 성금을 전달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격려했지만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신문을 읽다 불현듯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2010년 28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 희망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하루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강요하며 그녀가 부업으로 번 수 십 만원 남짓한 수입을 고스란히 빼앗아갔다.
생활비조차 주지 않고 얼굴조차 볼 수 없는 남편이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 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3년 6월 그녀가 임신 5개월째라는 사실을 알고 남편은 홀연히 사라져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한 쉼터에서 홀로 딸을 낳았다. 출산 후에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8만원인 춥고 좁은 반지하 방으로 옮겨가 살고 있다. 말이 서툴러 직장 구하기도 힘들었고, 구한 직장에서도 이용당하기 일쑤였다. 부업을 하며 살기위해 애썼지만 어린 아이를 돌보느라 수입이 변변치 못해 극한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인데도 어려움을 의논할 사람조차 주변에 없었다는 점이다. 믿고 의지할 사람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와 주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부터 못된 마음을 먹은 남편에 의해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상황에서 한국말조차 서툴러 극한 상황에 몰린 후에야 국제 구호단체인 적십자에 연락을 하면 도움을 받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들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인천적십자는 지난 4월부터 정서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 땅을 밟은 이주여성들에게 낯선 타국에서 겪는 문화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전통요리교실, 명절 차례상 차리기, 김장 담그기 등 우리 문화와 전통을 체험하고 이해하게 함으로써 가정 내 갈등을 줄이고 정서적 안정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러 방식으로 이들을 돕는 프로그램 운영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특히 인천 경기의 경우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천 경기의 11개 시군구가 외국인 주민비율이 5%를 넘어섰다.
다문화가정 부모와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계속 남는다면 거기에서 비롯되는 사회 갈등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 심각한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 갈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할 때다. 인도적 관점에서도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보듬어 안아야 한다.
추석을 맞아 인천적십자에 도움을 요청했던 베트남 이주여성을 찾아가 격려의 말이라도 전해야겠다.
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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