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구제역 파동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었다. 작년 12월, 진천에서 시작된 구제역으로 전국 33개 시·군의 195개 농장에서 가축 17만여 마리가 살처분 되어 땅에 묻혔다. 양돈·한우 농가가 많은 이천에서도 피해가 상당했었다. 급히 찾아간 축산농가의 참담한 현장에 함께 말을 잃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책은 농가를 두 번 울게 만들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구제역 발병농가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구제역이 발생했던 57개 농장에서 또다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발방지를 위한 과거 구제역 발생 농장과 위탁사육(비육) 농장에 대한 관리 강화에 정부가 실패한 것이다.
방역·차단에도 실패하여 진천에서 시작된 구제역은 순식간에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는 구제역 백신 효능 논란까지 일어났다.
축산농가 사이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기존의 백신을 고집하고 축산농가에 과도한 부담 씌우기를 유지했다.
백신을 제대로 접종한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는 등 의문과 증거가 계속 이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자체감사에 들어갔다. 이에 지난 6월, 농식품부는 구제역 백신 선정과 이용·공급체계구축·예찰업무 등에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축산농가에 과도한 부담을 준 사실도 인정했다.
감사결과로 농식품부는 농림축산검역본부장에 대해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를 건의하는 등 관련 공무원 32명에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책 실패에 의해서 중징계를 주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 달 뒤, 농가들의 치를 떨리게 만드는 소식이 들렸다. 정부의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하더니 죄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장 1명이 감봉 1개월, 중징계 요구를 받았던 4명의 고위공무원들은 견책에 그쳤다.
관계자들은 “밝힐 수 없다”, “우리가 결정한 사안이 아니다”면서 서로 떠넘기기 급급했다. 소중히 지켜야 할 축산농가와 업계종사자들을 뒤로한 채,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지난 9월10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왜 책임을 자꾸만 농가에게 떠넘기느냐”며 장관에게 물었다. “농가는 농가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미흡한 점들을 반성하고 합심해 구제역을 극복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억울한 축산농가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 식구를 감싸는데, 과연 합심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버리고 공명정대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중대한 책임이 있는 고위공무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부터 내리는 것이 그 시작이다. 진정 어린 반성과 과감한 결단만이 농가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더불어 정부는 앞으로 백신 선정, 공급체계 마련 등에 있어 축산농가와 업계의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함께 세워나가야 한다. 다시는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억울한 농가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이러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쳐나가길 바란다. 본인도 항상 관심을 가지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루빨리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되찾고 건강한 축산, 행복한 농촌이 되기를 희망한다.
유승우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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