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의 恨, 고국 품에 잠들다

70년의 눈물… 2시간30분의 귀향… 그리고 영원한 안식

▲ 일본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봉환단이 20일 파주시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서 115위의 유골을 모시고 납골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강제 노동 희생자 115명이 꿈에도 잊지 못했던 고국땅에서 영면했다. 일제에 의해 고국을 떠난 지 무려 70년만에 유골로 나마 귀향한 것이다.

한일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이하 귀향추진위)는 20일 홋카이도 조선인 희생자 유골 115위(位)를 3천㎞가 넘는 귀환길을 거쳐 마지막 종착지인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서울시립묘지 납골당에 모셨다.

납골당에는 사루후쓰(猿拂) 아사지노(淺茅野) 일본육군비행장 희생자 유골 34위, 슈마리나이(朱鞠內) 우류(雨龍)댐 희생자 유골 4위, 비바이(美唄) 토메이(東明)의 절 조코지(常光寺) 안치 유골 6위, 삿포로(札晃)의 사찰 혼간지(本願寺) 별원 안치 71위 등이 순서대로 조심스럽게 봉안됐다.

이날 납골당에는 가수 정태춘씨가 강제 노동 희생자를 위해 쓴 노래 ‘징용자 아리랑, 달아 높이 곰’ 중 ‘아리 아리랑 버려진 넋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달아 훤히나 비춰 슬픈 영혼들 이름이나 찾자// 고향엘 들러야 저승길 간다’는 슬픈 가사가 동판에 새겨져 붙었다. 또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손수 쓴 ‘70년 만의 귀향’이라는 글귀도 납골당에 나붙어 115위의 고향길을 반겼다.

귀향추진위 일본 측 대표단체인 ㈔아시아시민네트워크의 도노하라 요시히코씨(殿平善彦·70)는 “유골 발굴을 시작한지 40년이 다 되는 시점에서야 이렇게 훌륭한 곳에 안치돼 희생자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아직 다 끝난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을 이분들 앞에서 맹세한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한국 측 대표단체인 정병호 ㈔평화디딤돌 대표(60·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무관심하다고 생각해왔던 한일 젊은 세대가 참여해 진심으로 화해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며 “권력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긴장과 갈등을 만들고 있지만 이 젊은 얼굴들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깊은 감회에 젖었다.

한편 강제 노동자 115위의 70년만의 귀향길은 항공편을 이용하면 불과 2시간30분만에 도착할 수 있지만, 참가자들은 강제 노동희생자의 흔적이 있는 홋카이도-도쿄(東京)-교토(京都)-오사카(大阪)-히로시마(廣島)-시모노세키(下關)를 거쳐 부산-서울-파주로 옮겨 영혼의 아픔을 달랬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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