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막아라? 금융사는 ‘진땀’

금융당국, 법규 마련은 ‘뒷전’ 일선현장 압박만
계좌개설 거절 고객 항의…금융사 부담 떠안아

금융당국이 대포통장 근절에 나설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법적 근거는 만들지 않고 있어 일선 현장에서 고객들을 상대하는 금융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장발급을 거부당한 고객들이 법적 근거 없이 계좌개설을 막는다며 애꿎은 금융사에게만 항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사는 금융감독원의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 시행안’을 근거로 대포통장 근절대책을 실시하고 있다. 시행안은 대포통장을 근절하고자 통장개설 단계에서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계좌 개설을 적극적으로 거절토록 규정한다.

대포통장 이용이 의심되는 유형은 금융사기정보(비대면 거래 제한)에 등록된 자, 자택과 직장이 계좌개설 금융사 지점과 먼 곳에 있는 자, 거래신청서를 불성실하게 기록하는 자, 자본금이 일정금액 이하인 신설법인 명의로 통장을 만들려는 자, 기타 의심스러운 언행 등으로 대포통장으로 사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자 등이다. 금융사는 이를 근거로 의심 유형으로 분류된 고객에게 계좌 개설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계좌 개설을 거부당한 고객이 법적 근거 없이 지도공문만 가지고 통장 발급을 막는다며 항의하고 있어 금융사 입장이 난처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사에서 고객에게 통장을 만들어줘야 할 의무는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고객과 금융당국 사이에 낀 금융사만 모든 피해를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금융업계는 고객 민원이 최소화되도록 계좌개설 거절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 주고, 근거 법규를 마련해줄 것을 금융당국에 요구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통장발급이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하는데 실제 현장에서 고객이 발급을 원할 때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객이 민원을 제기하거나 본사에 항의하면 직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어 확실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통장발급인 예금계약이 민법상 ‘임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융업계에서 대포통장 이용이 의심되는 고객에게 통장을 만들어 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치는 금융소비자가 금융사에 금전이나 유가증권 기타 물건의 보관을 위탁하고, 금융사가 이를 승낙함으로써 효력이 생기는 계약을 의미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장개설 등 실무적인 사항을 법상에 반영하기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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