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꺼벙이 억수

내가 사는 지동은 수원에서 낙후마을로 꼽히는 동네다. 게다가 몇 해 전에는 끔찍한 사건까지 발생하여 지동의 이미지를 잔뜩 흐려놓기도 했다. 이런 지동이 얼마 전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은 선생을 비롯해 수원 지역에 사는 시인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시를 골목마다 적어놓았는가 하면, 이에 질세라 화가들도 어려운 걸음을 해 벽마다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래서 소위 수원의 명소(?)인, ‘시골목’과 ‘벽화마을’이 탄생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동에서만 40년을 살아온 우리 집에도 경사가 찾아왔다. 내가 동화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 주민센터에서 우리 집 담에 동화 속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되살려 준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됐다. 말끔해진 담장에 난데없이 개구쟁이들이 뛰어나와 웃고 떠들어대니 오고가는 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촌티 나는 꺼벙한 모습의 억수를 보고는 미소를 띠거나 아는 체를 한다.

웬만한 학교 도서관에 억수의 책이 보관돼 있어 책을 읽은 아이들이 많고, 설혹 읽지 않은 아이라 할지라도 입소문으로 대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내에 나갈 때나 집에 들어올 때 우리 집 담의 억수를 보면 기분이 좋다. 꺼벙한 모습에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억수를 볼 적마다 억수 같은 어린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헌 옷을 입고도 기죽지 않는 억수,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억수, 혼자 사는 외로운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준 억수, 친구가 팔을 다쳤을 땐 가방을 대신 들어준 억수, 친구들에게 욕이나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 억수,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거나 잘난 체 하지 않는 억수…

동화 속에서 억수는 친구들의 투표를 통해 학급을 위해 가장 착한 일을 한 아이로 뽑혀 ‘학급별’이 된다. 선생님은 억수의 가슴에 별을 달아주며 묻는다. 친구들이 왜 억수를 학급별로 뽑았는지 아냐고. 억수는 부끄러워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힌다. 대신 친구들이 억수의 좋은 점을 하나하나 말해 준다,

나는 어른들에게도 바람이 있다. 우리 집 억수를 본 사람들이 오랜 동안 잊고 지낸 저 어린 날들을 기억해 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소년,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던 소년…

바라건대, 착한 모습의 우리 집 억수가 그들의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는 저 꽃잎 같은 추억들을 하나하나 일깨워 주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