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소각장의… 이유있는 변신

[경기도시재생, 문화로!] 3. 부천 삼정동 소각장 프로젝트

외국의 유명한 도시재생 사례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이 폐시설을 문화시설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폐발전소를 활용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 폐가스저장고를 전시와 공연 등 복합문화시설로 운영 중인 독일 오버하우젠의 ‘가소메타’, 멈춘 기차역을 리모델링한 프랑스의 오르쉐미술관 등이 그 예다. 하나같이 빛바랜 과거의 영광을 딛고 문화예술기관으로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같은 가시적 성과에 국내 많은 지자체 및 기관 등에서 폐시설을 문화예술기관으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도시재생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마저 꼭 같지는 않다. 일단 부족한 시민 논의 과정이 문제다. 또 손 갈 곳은 끝없는 폐시설을 흑자내기 쉽지 않은 문화시설로 공익을 앞세워 지속적으로 운영할 만한 ‘전문가 주체’를 찾기 힘들다.

이 두 가지 난제 해결에 적극 나선 부천시의 ‘삼정동 소각장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이유다.

 

■ 쓰레기 소각장으로 성숙해진 시민사회

부천시 삼정동의 쓰레기 소각장은 지난 2010년 5월 그 생명을 다했다. 1992년 10월 소각장 건설 예정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 갈등을 불러일으킨지 18년만이다. 1995년 5월 완공 및 가동된 지 꼭 10년만이다.

부천시 삼정동에 쓰레기 소각장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1993년 1월 소각장 반대 대책위 구성, 1993년 쓰레기문제를 위한 시민모임 결성, 1994년 소각장 건설 공사 이행, 1994년 푸른 마을회 결성 및 자발적 감량운동 실시 등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1995년 삼정동이 완공 및 가동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각장은 건축 연면적 8천704.79㎡로 지상 6층ㆍ지하 1층의 공장동과 지층 및 2층의 관리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해 소각장 가동에 따른 주민 쓰레기 반입 감시활동을 시작으로 1997년 다이옥신 검출과 반입정지권 확보를 위한 주민협의체 구성, 1998년 시민 모임의 음식물 쓰레기 사료화 추진 등 끊임없이 시민들이 건강한 목소리를 냈다.

쓰레기 소각장은 분명 ‘미운오리새끼’였지만,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개통 2년 만에 기준치 20배를 넘는 다이옥신을 배출하고 악취를 내뿜었던 곳이지만, 시민의 자발적 각성을 불러일으킨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소각장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유해시설과 환경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공부하는 것은 물론, 시의 정책에 반기도 들고 시의원을 설득했죠. 개개인의 시민성이 성숙하는 과정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시의원들도 당성을 떠나 시민 의견에 적극 귀기울이는 등 건강한 시민 사회가 조성됐다고 봅니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실제로 당시 주민자치위원회는 소각장의 사용가능햇수가 10~15년인 것을 파악하고 해당 기간 만큼 삼정동 소각장을 운영한 후 부천시의 다른 지역에서 소각장 신설 운영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삼정동에서 시한부 삶을 시작한 쓰레기 소각장은 10년만에 문을 닫고 지난 2012년부터는 대장동에서 생활폐기물 재활동시설(MBT)이 본격 가동된 상태다.

“삼정동은 공장단지가 밀집해 있는 등 전반적으로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에요. 하지만 시민정신이 살아있는, 시민사회가 굉장히 잘 조성된 곳이죠. (개인적으로)삼정동 쓰레기 소각장 건설 당시 이런 지역 특유의 시민정신이 형성된 것이 아닐까(생각한다). 2010년 가동을 중단한 이후 철거 또는 활용하는 여러 방안을 이야기 할 때에도 시민 갈등이 첨예했지만 막무가내가 아니라 서로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는 과정이었어요.”(심재연 부천문화재단 교육문화홍보팀장)

■ 미운오리새끼, 백조로의 변신을 꿈꾸다.

2010년 5월 드디어 가동을 중단한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에 대한 활용 방안은 각양각색이었다. 시민들은 소각장 부지와 시설 등을 철거 및 리모델링해 공원과 체육시설로 조성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2011년 임시로 노인 대상 게이트볼장을 비롯해 족구장과 농구장 등을 공터에 조성하면서 공원과 체육시설로의 활용에 무게중심이 실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주민들의 의견이 모이고 폐시설의 활용 의지를 재확인하는 단계가 진행됐다.

“지연주민들이 쓰레기 소각장을 예술공원, 문화시설, 목욕탕, 수영장 등을 제안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수영장으로 바꿔달라는 주장이 좀 더 강하게 부각됐는데, 그 이유를 찾아 보니 기존에 목욕과 수영이 가능했던 복지관의 한 수영장이 안전심사에서 낮은 등급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거에요.

목욕탕도 하나도 없는 없는 동네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어달라는 주장이었죠.”(류자영 부천문화재단 소각장도시재생 TFT 팀장)

이처럼 주민 논의가 산발적으로 진행됐지만, 전문가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시의회가 소각장의 폐쇄 결정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향후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것에 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을 문제제기 했기 때문이다. 이에 2013년 경기도가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 폐쇄 결정을 내리면서 활용 방안에 주민과 전문가 등의 다양한 논의 및 연구가 본격화됐다.

이후 쓰레기 소각장 활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예산 지원이 결정되면서 일단락됐다. 부천시와 부천문화재단이 지원한 문광부의 2014년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부는 공모사업 전 현장실사를 통해 삼정동 소각장의 규모와 가치를 높게 판단, 전국에서 유일하게 당초 최대 지원액 10억원에서 두배인 20억원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그만큼 현재 전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렇게 2014년 10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삼정동 소각장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부천미래문화플랫폼’을 지향한다. 아직 리모델링 실시설계조차 이뤄지지 않았지만 다채로운 ‘파일럿 프로그램(시범 사업)’을 운영하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류자영 팀장은 “그간 우리나라 도시재생에서 대부분의 폐건축물은 철거 또는 특정 문화 시설로 활용하는 데 그쳤다. 어떤 공간으로 만들 지 공들여 고민하는 것이 부족한 국내 상황에서 건축물이 유기적 역할을 하며 지역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기록하는 데 의미를 뒀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공간의 정체성, 역사성, 특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향후 운영 콘텐츠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판 폐시설 활용 성공 도전은 시민과의 소통으로 시작

문화재단은 삼정동 소각장을 놓고 2014년 12월 1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토론회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예로 수요일마다 영화 상영 및 도시재생 관련 강연, 토요일에는 예술가들이 참여한 시민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다.

▲ 부천 삼정동 소각장 프로젝트를 통해 폐시설에서미래 문화플랫폼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획전시 주민토론회 등의 현장.

최근 청년들이 부천시자원순환센터로부터 폐가구ㆍ폐목재를 받아 벤치를 제작하고, 지역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파티 기획 등을 하는 청년 커뮤니케이터 육성 교육을 진행하는 등 세부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공간의 역사성과 현 상태를 부각시킨 기획전 <공간의 탐닉>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전시는 관리동과 소각동의 쓰레기 반입구 공간을 청소한 후, 해당 공간에서 진행했다.

‘김치앤칩스’ 등 19명의 예술가들이 쓰레기를 저장했던 지하 9m 벙커와 높이 39m 벽면에 특유의 공간성을 살린 작품을 선보였다. 시립 미술관 하나 없는 부천시에서 전시는 흥행했다. 한달동안 1천734명이 관람, 일일 평균 30~40명이 소각장에 미술작품을 보러 온 것이다.

손경년 재단 문화예술본부장은 “관람객들은 미술관으로서의 우아한 면모는커녕 과거 쓰레기소각장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상기시켜주는 냄새를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불친절하고 날것의 공간에서 멋진 작품으로 공간의 의미를 재탄생시킨 작가들의 역량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술회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부천대학교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3학년생과 최고령 70세 할머니 등 주민들이 함께 삼정동 소각장을 리모델링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진행한 것이다. 지역 대학들의 의미있는 지역사회 교류 프로그램으로 꼽을 만 하다.

이 같은 프로그램들은 5년 간 닫혀 있던 삼정동 소각장의 속살을 드러내 주민의 호기심과 관심을 충족시키는 한편, 자연스럽게 ‘미래문화플랫폼’이라는 공간의 지향점에 대한 시민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미래문화플랫폼을 쉽게 풀자면, ‘부천의 미래를 이끌 창의적인 청(소)년세대가 성장하는 문화예술교육 장소’로 요약할 만 하다.

이에 대해 손 본부장은 “10년 뒤 부천시에서 가장 유효한 자원을 청소년으로 봤다. 청소년들이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내 고향을 부천으로 보고 기여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것, 이를 위한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래문화플랫폼의 출발”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삼정동 소각장은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세계대회의 축제 행사장(15일), 지역사회의 멘토와 학생들이 기획 제작한 연극의 상연장(10월말), 아시아와 전국의 대안공간이 모이는 국제 컨퍼런스(30일) 등 점차 시민과의 소통 기회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재단은 또 ‘이례적’으로 삼정동 소각장 운영주체와 설계자에 대한 공모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공간을 완전히 리모델링 하기 전에 운영 주체를 선발,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공간 구성 및 운영 계획을 공유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문화부로부터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 느리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그간 운영 주체의 취향 따라 공간이 정체성없이 흔들렸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성공한 그 이상적인 프로그램들이 왜 부천에서는 안될까. 결국, 커뮤니티다. 삼정동 소각장이 미래문화플랫폼으로 지역에 뿌리 내리기까지, 지지고 볶더라도 커뮤니티는 죽으나 사나 같이 가야 한다.

시민, 전문가와 공공기관, 행정당국 등과의 거버넌스(협치)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앞으로 삼정동 소각장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지속가능한 운영체계 조성의 관건이 될 것이다.”(손 본부장)

과연 삼정동 소각장은 미래문화플랫폼이 될까. 국내에서 끝까지 주목할 만한 폐시설의 변화를 보여줄까. 성숙한 시민의식과 전문가들의 의지가 그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류설아기자

후원 :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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