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환경 딛고 성공…정상서 절제 못해 끝내 파멸
미국 프로농구(NBA)계 촉망받는 스타이자 TV 리얼리티쇼 주연이라는 신기루 같은 명성 뒤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네바다 주 크리스털의 사창가에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전 'NBA 스타' 라마 오돔(35)의 삶은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일부 스포츠 스타들의 흥망성쇠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역 시절 재빠른 리바운드 처리 능력과 섬세한 슛 감각으로 인기를 모았던 오돔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천부적 농구 재능을 밑천 삼아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마침내 그의 '꿈'은 이뤄졌다.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LA 클리퍼스에 지명돼 NBA에 진출한 오돔은 득점과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3박자를 갖춘 재능 있는 선수로 각광을 받았다.
그는 2009∼2010년 LA 레이커스가 연속 우승을 차지할 때 코비 브라이언트와 손발을 맞췄으며, 2011년에는 '올해의 식스맨'에 올랐다. 앞서 2004년에는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미국 국가대표로 나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돔의 '행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농구 선수로서 전성기였던 2009년에는 모델 클로이 카다시안(31)과 결혼했다.
카다시안과의 결혼과 함께 케이블 채널 E!의 '4차원 카다시안 가족 따라잡기'(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에 출연했다. 이 쇼가 인기를 끌자 스핀오프 '클로이와 라마'에서는 주연을 꿰찼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절제하지 못했다. 선수로서 내리막길을 걷던 2013년 카다시안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그의 '성공신화'는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그는 처가의 이혼 추진에 반발해 클로이와의 성관계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했다. 마약 복용, 음주운전 등의 추문도 잇따랐다.
오돔의 추문이 이어지자 방송국도 그를 외면했다. 농구계에서 은퇴한 지난해 초부터 리얼리티쇼에서는 아예 오돔의 이름은 사라져버렸다.
이 같은 오돔의 흥망성쇠는 불우한 성장 배경과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해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 연약한 성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가 15일(현지시간) 전했다.
특히 이 신문은 "오돔의 성공과 추락은 21세기 시대에 과거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연상케 한다"면서 저급한 자본주의 문화가 빚어낸 비극이라고 했다.
실제로 오돔은 제임스 르브론을 비롯한 흑인 NBA 스타와 마찬가지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딛고 농구로 성공한 케이스다. 성공의 이면에는 늘 불행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12살 때 어머니가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에게 맡겨졌으나, '마약쟁이' 아버지는 그를 학대했다.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할머니 손에 길러졌다.
26살 때는 사랑하는 아들을 '영아 돌연사 증후군'(Sudden Infant Death Syndrom)으로 보냈으며, 31살 때는 평소 아끼던 사촌 동생이 총에 맞아 숨졌다.
몇 달 전에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약불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게다가 그는 올해 초부터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돔은 결국 약물에 의존해야 했다. 그가 13일 저녁 네바다 주 크리스털의 '러브 랜치'(Love Ranch)라는 성매매 업소에서 의식을 잃고 쓰려진 것도 약물 복용이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오돔은 1주일간 이곳에 머물면서 지인들과 파티를 벌였으며, 코카인과 약초를 넣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오돔이 최소 한 차례 뇌졸중을 경험하는 등 심한 뇌손상을 입은 상태"라고 밝혔다고 NBC 방송은 전했다.
오돔의 고교 시절 농구 코치이자 정신적 멘토인 게리 찰스는 "나는 늘 라마를 걱정해왔다"면서 "그는 매우 섬세하고 연약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갑작스러운 성공을 감당할 만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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