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부른 '경비실 택배 수령시간제한' 놓고 논쟁 가열

"입주민 횡포" vs "경비원 근무 태만"    
노동 법률가 "새벽시간 택배수령은 경비원 노동권익 침해"

시흥에서 택배 수령시간 제한을 놓고 언쟁을 벌이던 아파트 경비원이 입주자대표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을 놓고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파트 경비원 인권보장 차원에서 택배 수령시간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비원은 24시간 근무가 당연한 것이니 입주민 편의차원에서 밤늦게 택배를 수령하는 것은 용인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30일 오전 10시께 경기도 시흥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경비원 김모(67)씨가 입주자대표 A(69)씨를 소지하고 있던 손톱깎이에 달린 예리한 흉기로 두차례 찔러 살해했다.

 

김씨는 경비실로 배송된 택배를 주민들이 새벽 시간대에 찾아가는 문제를 놓고 A씨에게 애로사항을 얘기하던 중 A씨가 "그럴거면 사표를 써라"고 한 말에 격분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최근 관리소장과 상의해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를 수령하는 시간을 오후 11시로 제한한다는 안내장을 26일 아파트 게시판 등에 부착했다가 A씨의 반대로 28일 수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A씨가 안내장을 붙인 김씨를 관리사무소로 불러 질책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상에서는 경비실 택배 수령시간 제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 네티즌은 "경비원도 사람인데 늦은 시각 경비실에서 조는 중에 주민들이 수시로 택배를 찾으러 오면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라며 "물론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주민들이 급여를 준다고 해서 경비원을 막 대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수원 광교신도시 내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은 "우리 아파트에도 택배 수령시간은 제한돼 있지 않다"며 "24시간 2교대 근무하다보니 새벽에는 쪽잠을 자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주민들이 택배를 찾으러 오면 우편물 수령 대장에 기입하고 택배를 내주는 일이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에 반해 다른 네티즌은 "기본적으로 잠을 자지 않고 근무하라고 경비원을 고용하는 건데 야근하고 늦게 귀가한 입주민이 새벽시간에 택배를 찾는게 무슨 횡포가 되느냐"고 반론했다.

 

용인 기흥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 편의 차원에서 경비실은 24시간 운영되고 택배를 맡겨뒀다면 언제든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며 "대신 경비원들의 근무 여건을 고려해 근무 초소 수보다 근무자 수를 더 많게 배치해서 돌아가며 일정 시간씩 쉴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 법률 전문가들은 경비원의 법적 권익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수영 변호사는 "근로계약서를 일일이 검토해봐야 알겠지만 대다수의 경비원들은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를 '무급휴게시간'으로 근로계약을 한다"며 "사용자(관리사무소·입주자대표회의)가 근로기준법상 경비원의 심야시간 근무에 대한 추가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것인데, 실제로는 경비원들이 야간 근무를 강요받는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경비원이 기본적으로 24시간을 근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새벽시간대 입주민이 택배를 수령하는 것은 경비원이 노동권익을 침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심야시간 택배 수령이 필요하다면 합법적으로 야간 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던가, 택배 수령 공간과 관리자를 따로 두어 서비스하는 등 합리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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