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꽃이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꽃은 관심 밖의 존재다.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을 봐도 그저 무심할 뿐이다. 내가 좋다고 해서 남들도 다 좋으란 법은 없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지난 어느날 공원으로 산책을 갔을때의 일이다. 한바퀴 돌고 나오는데 전도를 나온 젊은 목사님과 그 일행을 만났다. 무척 열심이다. 그 앞을 지나가려니 나에게도 목사님이 말을 건넨다. “스님,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예.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뜻밖의 대답이 나오자 목사님은 할말을 잃은듯 “아!” 라는 짧은 감탄사만 내뱉았을 뿐 달리 말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오는 동안 젊은 목사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연륜이 쌓이면 목사님도 나의 대답을 이해하리라.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예수님이 실재로 존재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훨씬 더 매력을 느낀다.
불교가 내 성향에 더 맞아서이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사람이 불교를 믿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종교적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목사님이 된 어릴적 친구가 있다. 우리는 서로의 길을 존중한다.
종교는 인간의 내면에서 삶과 죽음을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험난한 세상살이에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주고 그 안에서 행복과 평온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내가 믿는 종교만이 최고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가, 어떤 사람은 카톨릭이, 또 어떤 사람은 불교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종교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누군가 특정한 종교에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위안을 얻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이런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종교가 인간의 영혼에 자양분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지 갈등과 고통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남의 행복도 소중하게 생각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개개인이 가진 견해의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의 종교에 대해 마음을 연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와 같은 종교간의 비극은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왜 종교를 위해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사람들이 조금만 더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를, 모든 존재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밤이 깊었다. 가을빛 내려앉은 세상 위로 소리 없는 달빛이 흐른다.
도문스님 수원 아리담문화원 지도법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