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그리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도록 앞장서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사건들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교회도 물질지상주의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도 교회 확장의 틀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 보니 마치 사회기업의 성장 방법과 동등한 논리를 적용하는 경우를 봅니다. 사회가 물량주의 공식 안에서 기업성장을 계획하듯이 우리 교회도 똑같은 잣대로 교회를 키워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의식전환을 하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용서와 평등과 사랑이라는 큰 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세워주신 가장 중요한 틀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사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려주신 이런 큰 사명을 이 시대 교회가 어떻게 이루어내고 있는가 하는 데서는 사회인들이 머리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교회가 발전하는 곳엔 나눔과 소통이 성장해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가 각자 대형교회를 향해서 무섭게 치닫고 있습니다. 물량주의가 만연되어가는 현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되면서 절망감이 사회를 비틀게 하고 때론 극단적인 행위가 자행되는 사건들이 여러 보도 매체에서 기사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무서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사회에서는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성장에만 급급해하는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수가 우리나라 인구의 무려 3분의 1이 되고 더구나 지도급에 있는 수는 반이 넘습니다.
예수님의 사상을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역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사회가 교회를 위해서 걱정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는 냉엄합니다. 결코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사회의 편임을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증상은 무신론주의 팽배와 신자수의 둔화 현상입니다. 인도의 ‘간디’가 “나는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증오한다.”라고 한 말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진행형이라는 것은 현대 교회가 정치권력과 야합도 불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정치가들을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년 총선엔 수많은 출마자들이 교회를 찾을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것을 교회성장이랍시고 악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재용 신부·천주교 수원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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