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딱딱한 파출소 문화사랑방으로 변신
그 앞에 순사(경찰관)가 서 있었다. 내게 파출소는 방과 후 논밭에서 주운 삐라(북에서 온 전단)와 공책 서너 권을 바꾸는 물물교환의 장소로 기억된다.…(중략)…파출소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가장 쉽게 경찰을 만날 수 잇는 곳이었으나 이제는 특별히 필요가 있는 곳에만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거나 폐쇄되기도 한다.
…(중략)…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는 창작공간이나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하면 어떨까 고민하다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공모에 덜컥 당선되면서 꿈이 프로젝트로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박찬응 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이 <파출소가 돌아왔다> 프로젝트 추진단장을 맡았던 당시 해당 성과를 정리해 결과 자료집에 실은 글 ‘파출소는 둠벙이다’의 일부.
파출소의 변신은 무죄… 청소년·직장인·지역 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 참여 이끌어
누군가가 ‘파출소’하면 지서ㆍ순사ㆍ삐라 등을 떠올릴 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주취자ㆍ무전기ㆍ영화 속 부정부패한 경찰 캐릭터 등을 이야기한다. 시대 변화에 세대마다 각기 다른 단어를 내뱉지만 그 기저에는 한결같이 ‘차갑고 딱딱한 공간’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자리한다. 공공의 영역이면서도 공공에게 닫혀있는 듯한 파출소는 오랜 시간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다.
지난 2013년 신생 지역문화재단이었던 군포문화재단이 전국의 문화재단과 문화예술계, 언론 등으로부터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이 파출소에 대해 긍정적 인식 전환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박찬응 본부장이 밝힌 것처럼 ‘덜컥’ 시작했다가 프로젝트 실행 첫 해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안겨준 프로젝트 <파출소가 돌아왔다>(이하 파출소가)가 그것이다.
“지역 내 파출소들이 지구대로 통폐합되면서 기존의 파출소 건물이 유휴공간이 됐죠. 시측에서는 부수고 새 건물을 짓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중이었고요. (군포문화재단 예술본부장으로 근무중이었던)박찬응 본부장을 주축으로 군포문화재단은 시에 ‘없애지 말고 문화공간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최남희 군포문화재단 예술진흥팀장ㆍ파출소가 시즈 3 담당)
그 시작에 ‘도시재생’ 혹은 ‘공공예술’ 등의 거창한 단어는 없었다. 다만 지역문화재단이 ‘문화재단답게’ 꿈꿨을 뿐이다. 머릿 속 그림을 구체화하는 데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지원 1억원이 마중물이 됐다. 당시 문체부는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파출소가 시즌 1을 지역문화재단 역량강화사업으로 선정했다.
이후 ‘과정의 공유’를 지향한 문화재단은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가와 문화예술단체, 국내외 작가,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해외 작가와 주민이 함께 군포경찰서 140m의 담벼락에 한글을 쓰고, 작가와 청소년이 함께 금정파출소를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꾸미고, 지역의 목공예술가들이 버려진 재료를 활용해 낡은 버스정류장을 리모델링하고, 직장인 밴드와 연극반이 파출소 주차장 부지에서 공연하고, 시민에게 개방한 파출소의 2층에서는 프로젝트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상영했다.
최 팀장은 “파출소가 초기에는 시민들도 ‘뭐 하는 짓인고’하는 시각이 있었고 경찰들도 반가워하면서도 성가스러워하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면서 “하지만 마무리 시점에는 전국에 유휴공간에 대한 훌륭한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인정받고 문화재단을 주축으로 지역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말했다.
파출소가 첫 해에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는 지난 10월, 꼭 2년 만에 다시 군포시의 파출소들을 찾았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파출소가 시즌 2, 3이 2년간 진행됐다.
2014년에 3천만원으로 대폭 축소된 지원금 탓에 전반적으로 사업 규모가 확 줄었다. 2015년에는 외부 지원금 없이 문화재단 자체 예산 1천500만원을 투입했다. 이에 임대료로 월세 200만원을 냈던 파출소 1개소는 운영을 포기했고, 산본ㆍ재궁ㆍ당정 등 총 3개 파출소만 기존 프로젝트 취지대로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방문한 당정파출소에서는 한국으로 시집온 지 8년차인 캄보디아 출신의 무엉타이(33ㆍ여)씨가 능숙한 한국말로 반겼다. 당정파출소는 오래된 공단지역으로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은 곳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다.
무엉타이는 현재 당정파출소를 리모델링한 ‘레인보우 카페’의 바리스타다. 군포시다문화센터에서 함께 교육 받은 베트남, 중국, 일본 등 외국인 주부 7명이 번갈아 근무한다. 이들은 차 판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강좌를 진행한다. 다문화인권단체인 ‘아시아의 창’이 위탁 운영하는 2층에서는 한국어, 근로 교육, 공예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군포시의 대표적인 문화볼모지였던 곳이 파출소가를 계기로 철거되지 않고 진정한 문화카페로 변모한 것이다. 카페 밖 작은 주차장에는 컨테이너 2개동이 눈에 띈다.
지난 201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사업으로 파출소가와 인연을 맺은 유승연 작가의 작업실 겸 커뮤니티 공간이다. 남편인 강장원 작가와 함께 꾸린 예술가 그룹 ‘CnC’의 사무실을 겸한다.
컨테이너에서 나와 인사하는 유 작가는 “앞으로 군포 시민들의 삶과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서 직접적으로 그들과 연관된 작업과 전시를 하고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
지난 2012년부터 군포 시민으로 살고 있는 유 작가 부부는 2014년 산본파출소 2층을 갤러리 P.S2(Police Station Layer2)로 리모델링했다. 올해에는 P.S2 전시와 함께 당정파출소에 설치한 컨테이너를 거점으로 지도만들기 등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 부부를 발굴한 문화재단은 산본파출소의 주차장 부지를 야외 공연장으로 활용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파출소가를 통해 탄생한 아마추어 극단의 공연 ‘즐거운 학교생활’은 정부가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해 확대 운영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산본파출소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공연, 전시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 일상, 이 시장에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실 어떤 예술인에게서는 선민사상이 느껴져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즐겁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홍보도 잘 안된 것 같아서 아쉽다”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우려했다.
파출소가는 모두에게 주목받던 화려한 시작과 달리 지원 예산 축소와 전문 인력 부족등의 이유로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최 팀장은 “사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며 각종 문제의 해결 방법을 고민 중”이라면서 “공공의 유휴공간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려 했던 파출소가의 본래 취지를 살려 좀 더 시민 접점이 많은 공동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등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다. 그러나 문화재단 담당자의 진지한 고민에 파출소가를 통해 형성된 지역 예술가, 이주 여성, 아마추어 시민 예술가, 청소년 등 새로운 운영 주체들의 열정이 기대감을 갖게 한다.
류설아기자
후원 :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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