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헬멧, 자녀의 목숨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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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시간에 송도국제도시를 지나다보면 눈길을 잡는 인상적인 광경과 가끔 마주한 적이 있다. 외국인 엄마가 초등학생 형제 세 명을 거느리고 줄을 지어 자전거를 타고 체드윅국제학교 쪽으로 향하는 풍경이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어미닭과 졸졸졸 쫓아가는 병아리들 같아 따뜻하게 눈길을 사로잡지만, 내게 더 인상 깊게 남아있는 모습은 엄마도 세 아이도 모두 늘 헬멧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적십자사가 위치한 동네에는 초·중학교도 있고, 약수터도 있어 자전거를 탄 학생들이나 어르신들과 매일 아침 흔히 마주친다. 이들 중 어느 한 사람 헬멧을 갖춰 쓰고 자전거를 타는 이가 없다. 복장까지 제대로 갖춰 입은 자전거출근족이나 동호회원들을 제외하고 학생이나 일반인들 가운데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다.

 

위험천만한 광경이 수시로 목격된다. 등교시간에 쫓긴 학생들이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 한가운데를 차량이 잠깐 뜸한 틈을 타 무단으로 가로질러 자전거로 달리는가 하면, 약수통을 짐받이에 가득 싣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어르신이 탄 자전거가 큰길로 나서는 차량과 부딪칠 뻔한 광경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자전거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전거 사고로 인한 인구대비 사망자 숫자가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히고 있다. 올해만 해도 벌써 200명이 자전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도로교통공단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자전거 사고는 연평균 10.3%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는 연평균 0.37% 감소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10만 명 당 자전거 사고 사망자는 5.41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OECD 평균의 7배나 된다. 끔찍하지 않은가.

 

한해 300명 정도가 자전거 사고로 목숨을 잃는데 이중 90%가 헬멧을 쓰지 않고 있었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통전문가들은 헬멧만 제대로 갖춰 쓰면 설령 자전거 사고가 발생해도 뇌손상을 막아 목숨을 잃는 일은 피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왜 우리들은 그 소중한 아이와 어르신들에게 헬멧 씌울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언론에서 최근 자전거 사고 위험을 자주 환기시켜 주는데도 남의 일처럼 무심히 흘러버리고 있다. 우리 각자의 안전불감증이 너무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안타까운 생각에 인천적십자사가 나서기로 했다.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린이 안전헬멧쓰기 캠페인’을 연말까지 벌일 계획이다. 인천시교육청,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인천지방경찰청, 인천도로교통공단의 협조를 얻어 자전거 안전교육과 캠페인을 시작한다.

우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헬멧쓰기 포스터를 부착하고 영상과 음원으로 제작한 캠페인 홍보를 교내방송을 통해 내보내 아이들부터 안전의식을 갖도록 할 방침이다. 

오는 21일에는 인천 관교동 중앙어린이교통공원에서 관련 단체와 학생 1백여 명이 모여 캠페인 런칭 행사도 벌일 계획이다. 이날 인천적십자에 신청을 한 어린이 50명에게는 1시간 동안 자전거 안전교육과 실습을 실시한 후 헬멧을 무료로 배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런 노력도 시민들의 자각이 뒤따르지 않으면 허사가 될 것이다. 소중한 자녀를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매일매일 자전거를 태워 내보내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가. 자녀들과 어르신들께 오늘 당장 헬멧부터 씌우자. 그 헬멧 하나가, 우리 아이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줄 것이다.

 

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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