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시장 구석 1평짜리 가게에서 옷을 팔면서도 브랜드 의류 사업을 꿈꿨다. 시장 옷이라는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소재와 디자인을 고급화하고 여성 캐주얼 브랜드 ‘크로커다일 레이디’ 등으로 미시ㆍ중년 여성을 공략해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6월엔 60년 전통의 국내 대표 제화 에스콰이아를 인수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은 ‘장사로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과 포기를 모르는 헝그리 정신이 지금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최 회장은 전경련 특강에서 “이제는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헝그리 정신은 어릴 때 가난하고 못 배운 나 자신을 바꾼 말”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은 정주영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러 언론에서 정주영 회장을 추모하며 불굴의 도전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이봐, 해봤어?’는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패가 두려워 노력도 해보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부정적 사고에 대한 직격탄이다. 정주영식 경영철학은 헝그리 정신, 용기있는 도전 정신, 통념을 뛰어넘는 창조 정신 등으로 요약된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도 헝그리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매킨토시 컴퓨터로 성공을 거뒀지만 독단적인 기업운영으로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해고되는 아픔을 겪었다. 훗날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하기 위해 복귀한 그는 아이폰과 아아패드를 출시하며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였던 바탕은 배고픔에 대한 옛 기억이다. ‘Stay hungry, Stay foolish(배고픔을 유지하라, 우직함을 유지하라)’는 헝그리 정신을 잘 표현하는 명언이 됐다.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 의욕이 세계 최하위권으로 드러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15년 세계 인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61개국 중 54위를 기록했다. 브라질(50위)ㆍ아르헨티나(56위)ㆍ베네수엘라(59위) 등의 남미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경제의 주된 경쟁력이었던 근면하고 의욕 넘치는 근로자는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대다수 언론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노동 의욕이 낮은 것을 젊은이들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탓으로만 돌려선 안된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질 희망이 사라진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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