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기소는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소를 받아들인 것이다. 정신대 피해자들을 ‘일본군의 정신적 위안자’, ‘일본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 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대한민국의 지식인 194명이 학자의 주장을 사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박유하 교수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른 지식인 60명은 이 책이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지만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성명을 냈지만 사실은 박유하 교수를 두둔하는 셈이다. 이 두 지식인 집단의 성명에 공통된 내용은 ‘제국의 위안부’가 학문적 영역에 속하는 책이므로 형사처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모든 책이 학문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다. 학술적인 책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방법이 정밀해서 내적타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가 내적타당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지식인 60명 성명에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정치적 주제에 대한 연구가 내적타당성이 결여하면 학문이 아니고 정치선전이다.
정치선전은 학문이라는 미명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박유하 기소에 대해 일본 관방장관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제국의 위안부’가 대일본제국에 유리한 정치선전이라는 사실은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성명에 참여한 대한민국 지식인들은 『제국의 위안부』를 학문의 영역으로 본 것인데 정말 이상하다. 순수한 학술적 논쟁이라면 일본 각료가 왜 끼어들 것인가?
물론 이 책의 연구방법과 결론이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두둔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 박유하는 다른 책에서 독도를 일본과 공유해야 하며, 평화를 깨뜨리면서 지켜야 할 영토는 없다고 일본 극우파와 같은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사한 책이 프랑스나 독일에서 출판되었으면 명예훼손 이전에 나치를 찬양한 죄로 벌써 저자는 감옥에 갔을 것이다. 현재 우리 국회에도 일제를 옹호하거나 찬양하면 형사 처벌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이덕일은 전 고려대 교수 김현구의 책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식민사학이라 비판했다고 김현구가 고소하여 기소되었다. 임나일본부는 고대에 우리 남부지방이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일본 극우파 학자들이 고안한 대표적인 식민사학이다.
김현구는 이 책 서론에서 임나일본부가 없었던 것처럼 써 놓고, 각론에서는 일본 백과사전에서도 믿을 수 없는 역사서로 평가한 ‘일본서기’를 인용하여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임나일본부의 강역도 종래 경상남도 일부에서 전라도와 충남과 경북 일부까지로 확대해 놓았다.
임나일본부보다는 ‘한반도남부경영’이 적절한 용어라고 주장했다. 이덕일은 여러 역사서를 교차 검증하여 임나일본부는 허구이며, 따라서 김현구가 일본 극우파의 식민사관을 추종 확대한 식민사학자라고 밝혔다. 사실 김현구 책의 내용은 대단히 헷갈리게 쓰여 있다.
김현구의 고소는 처음에 서부지검에서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김현구가 고검에 항고하자 고검에서 기소해서 재판이 진행 중인데 대단히 이례적인 사례이다.
진정한 학문의 영역에 속하는 이덕일의 연구를 기소한 것에 대해 지식인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일본 극우파 식민사관을 옹호하면 나서서 두둔하고, 비판하면 나서지 않는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모습을 어디서 그 연유를 찾아야 할까? 정말 이상하다.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지식인들 사이에 아직도 식민사학이 넓게 침윤되어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검찰도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비판한 경우에나 두둔한 경우에나 모두 기소하니 이해하기 어렵다.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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