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공무원의 나라 ‘세종시’

변평섭.jpg
세종시의 한 중국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 부처의 6급 직원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같은 부서의 서기관 역시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6급 직원이 얼른 일어나 상급자인 서기관에 가서 인사를 했다. 자연히 부인도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런데 두 가정의 중학생 아들이 모두 같은 반 친구여서 서로들 아는척을 했다. 두 가정은 각기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6급 직원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상급자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비쳐졌을 수도 있다. 거기다 엄마까지…. 또 서기관의 아들은 그런 속에서 우쭐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사실 공무원이 대부분인 세종시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한 포털사이트에 세종시가 마치 이런 복잡한 구조의 계급사회로 갈등을 빚는 것처럼 문제를 다루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말단 9급에서 장차관에 이르기까지 9개 부처 2만명 상당의 공무원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고 있는 세종시에서는 의외(?)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 공직사회도 사무실 안과 밖의 자기 위치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성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제일 민감한 곳이 학교의 엄마들 모임인데 여기서도 ‘계장 사모님’, ‘과장 사모님’하는 식의 지위가 아니라 엄마의 동등한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음은 다행이다.

 

문제는 이런 자리에서 삐딱한 사시(斜視)를 가진 사람들이 이야깃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령 앞에서 이야기한 중국 식당의 경우 상급자를 만났을 때, 그 가족에까지도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로 보지 않고 ‘계급사회’의 현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과장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개 아버지는 아부를 잘한다”고 퍼뜨리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의 병폐가 된다. 

마찬가지로 학교 엄마들 모임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과장 부인을 두고 학교에서까지 과장 행세를 한다고 힐란하면 정말 어떻게 되겠는가?

 

몇 년전 군부대가 밀집한 A지역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아빠의 계급과 관계된 것이었다. 학교 친구끼리도 ‘우리 아빠는 소령이야’하면 ‘우리 아빠는 중령인데….’하는 식의 말싸움이 자주 발생했고 그 가운데 하사관의 자녀들은 많은 열등감을 안아야 했다. 심지어 부인들까지도 계급대로 어울린다고 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은 빠르게도 이 군부대 밀집지역의 그와 같은 현상을 불식시키고 있고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추세다.

 

흔히 사회에서 말썽이 되고 있는 ‘갑질’의 악폐가 오히려 계급이 세분화되어 있는 공직사회에서는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물론 국가 사회에서 계급은 어느 조직이든 없을 수 없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갈등도 있기 마련. 그래서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 또는 ‘흙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 하는 심장을 찌르는 ‘불공정’의 세태를 개탄하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적어도 같은 동류의 계급사회-이를테면 세종시의 공무원 사회에서는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그것을 잘 조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같은 대한민국 땅이라 해도 서울 명동의 땅값, 제주도의 땅값, 그리고 세종시의 땅값이 그 역할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을 서로 인정하듯, 그 직급의 상하를 떠나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