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어느 날… 길 위에서 만난 흐릿한 기억
북향엔 우리의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선생은 1988년에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북한의 길 위에 서 있었죠. 이 영상에서 선생은“길 위에서의 긴 하루가 지나고, 찾아온 밤은 갑작스럽다. 하루가 지났다. 이상이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그때의 감흥에 대해 긴 메모를 남기고 있어서 당시 상황을 조금은 유추할 수 있어요. 메모가 조금 길긴 하지만 읽어보도록 하죠.
“어떻게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 이 이미지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지금 그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세 명의 여성학자들이었다. 닛산 신형 밴을 타고 우리는 평양을 순회하고 비무장지대로 향했다가 개성을 통해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돌아왔다. 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면서 남긴 혼합된 이미지는 내가 그 장소와 사람들에 대해 느꼈던 단절감을 암시하는 듯하다.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북한 사람은 우리에게 붙여진 사람들, 즉, 수행원들이 전부였다.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10일간의 여정동안 우리는 다시는 서로 만나거나 소식을 들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들에 대한 기억 역시 길 위에서 만난 흐릿한 사람들의 기억만큼이나 지금은 희미하기만 하다.”
북한을 다녀오고 난 뒤에 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마도 선생은 선생 외에 두 명의 여성학자들과 북한을 방문한 듯해요. 왜 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선생이 평양을 순회하고 비무장지대로 향했다가 개성을 통해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서 평양으로 돌아갔던 순간이 인상 깊었다는 것은 메모를 통해 알 수 있지요.
10일간 그 짧은 ‘여정동안’ 선생과 일행은 ‘길 위에서 만난 흐릿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왜 선생은 ‘다시는 서로 만나거나 소식을 들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 했을까요? 우리는 아무도 북향을 생각할 수 없는 공간에 서 있어요. 북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상검열을 받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곳 북향의 저 사회에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형제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고, 그런데 그 사실의 이면에는 전혀 다른 ‘누군가’로 살고 있는 이들이 또한 그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등 돌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선생의 영상은 보여주고 있어요. 낯설고 이질적인 순간들의 찰나들과 그 길 위에 서야 하는 한 사람의 시선.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시선일지도 모르지요.
김종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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