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지독한 눈병이었다. 한여름도 아닌 늦가을에 불쑥 찾아온 눈병(악성 결막염)은 한 달 가까이 기자를 괴롭혔다.
보통 3~4일에 끝나 버린 무수한 결막염은 ‘새발의 피’였다. 전체가 붉게 물든 눈동자는 기본이고,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눈부심 현상은 기자를 왕따 아닌 왕따로 만들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10일간의 병가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식 하루 일과는 이랬다. 먹고 자고 화장실 가고, 틈틈이 눈에 약 넣고 음악을 듣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 TV를 보는 것이었다. 지인들로부터 웬 호강이냐고 엉뚱한 부러움도 샀지만 당사자에겐 크나큰 고통이었다. 눈이 불편한 것을 떠나 온종일 밀려드는 고독함 때문이었다.
눈병으로 인한 자가격리의 심적 고통도 이랬건만, 지난 5월 이후 전국에 몰아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자가격리자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다. 당시 자가격리자는 전국적으로 1만6천693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가격리 기간동안 아무도 없는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았고, 무슨 엄청난 전염병의 원인이라도 된 듯 당혹감과 공포를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보건당국은 일정 분량의 라면과 즉석밥, 반찬, 체온계, 마스크, 손소독제 등 생필품을 가져다주고 하루에 단 두차례만 상태를 검사했을 뿐 심적 고통을 위한 해결책은 없었다고 한다.
특히 격리 지침이 허술해 위생 관리와 감염 예방은 상당 부분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져 자가격리자로 하여금 불안감을 한층 더 가중시켰다.
이런 자가격리자에게 나라와 지자체가 보상을 해준다고 한다. 메르스 통합정보시스템(PHIS)에 등재된 해당자에 한해 관련법에 따라 1인 가구 40만 9천원, 4인 가구 110만 5천600원 등 긴급생계비를 차등 지원했거나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자가격리자들의 마음의 병이 수개월 후에 지급되는 보상금으로 치료될 부분은 아니다. 일단 덮고 지나가려는 식의 대책은 우리 사회를 더 병들게 할 것이다. 보건당국은 메르스와 보상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국가 재난 시 국민의 마음부터 보듬을 수 있는 단단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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