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民意와 동떨어진 국회의장의 기준

정의화 국회의장이 경제관련법안의 직권 상정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에 (직권상정이) 가능하다고 돼 있는데 과연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이유를 들고 있다. 직권상정을 요구한 청와대에 대해서도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 않다”고 공격했다. 앞서 현기환 청와대 수석이 “국회의원 밥그릇만 챙기는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한 불쾌감의 표시다.

정 의장이 근거 삼는 기준은 지금의 경제 사정을 국가 비상사태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상사태의 판단 여부는 애초에 확정적 의미가 아니다. 직권상정을 결정해야 할 국회의장 스스로 내리는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런 면에서 경제관련 법안의 처리를 비상사태로 보지 않는다는 정 의장의 판단은 존중돼야 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여론을 존중해야 하는 합리성과 최소한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함께 논의되고 있는 선거구 획정 문제를 보자. 정 의장은 연말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것을 염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권상정을 암시한 것이다. 선거구 획정 문제는 국가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정 의장이 보는 국가 비상사태는 경제관련법안과 선거구획정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경제 관련 법안은 비상사태가 아니고, 선거구 획정은 비상사태라는 인식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국민의 뜻과 달라도 너무 다른 구분법이다. 국민이 지금 걱정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다. 계속되는 경영난에 여기저기서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어느 기업에서는 입사 1~2년 된 신입 사원에게 명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7년여 만에 단행된 미국 금리 인상은 우리 경제를 하루 앞도 점칠 수 없는 위기로 몰고 있다. 개선되는 듯했던 실업률은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민에겐 분명히 경제 비상사태다.

선거구 획정에 대한 국민 생각은 어떤가. 정치권이 서로 한 석이라도 더 얻으려 싸우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획정이 늦어지면서 생기는 현역 의원들의 이익도 부수적으로 챙기는 꼼수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욕심을 버리면 지금이라도 결론날 일이다. 국민 누구도 이 문제를 국가 비상사태라고 보지 않는다. “정치권이 선거구 획정 문제를 두고 밥그릇 싸움하고 있다”는 얘기는 길가던 소도 중얼거리는 여론이다.

그런데 정 의장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직권상정이라는 현안에 올라탄 개인 정치인가. 대망론에 군불을 지펴보려는 정치 행보인가. 오판이다. 지금 여론은 정 의장 편이 아니다. 오로지 청와대와 국회의장을 싸움 붙여 이득을 챙기려는 집단에게만 영웅이 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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