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8월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송죽동 경기일보사. 경기일보 지령 1호가 윤전기에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윤석한 발행인, 오양동 편집국장 등 직원들이 감격의 환호를 올렸다. 1도1사(1道1社)라는 유례 없는 언론 탄압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경기ㆍ인천 지역민들에게 언론 선택의 잊었던 권리를 되돌려 드리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경기일보의 역사가 오늘로 8천번째 신문을 발행했다.
창간 초기 경기일보의 사명은 지방자치의 착근(着根)이었다. 지령 1호의 1면 머리기사로 ‘地域 특성 맞는 主體道政 펴길’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조화롭게 이뤄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이었다. 아울러 창간사가 밝힌 ‘공명정대한 사회’는 대한민국을 향한 경기일보의 약속이었다. 곧이어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고 경기일보는 그 중심에 섰다. 참된 지방자치를 위해 타협 없는 소신을 실천해 갔다.
90년대는 또 한 번의 암흑기였다. ‘국민’과 ‘역사’를 앞세운 또 다른 언론 탄압이었다. ‘언론 사정’이라 명명된 무기가 언론을 길들이고 줄 세우려 했다. 누가 보더라도 과거 앙금에 대한 새로운 권력의 보복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총칼에서 권력기관으로 바뀐 도구뿐이었다. 경기일보에도 정치사상의 획일성과 지방자치의 무력화가 강요됐다. 경기일보가 가려던 창간 정신이 송두리째 도전받는 위기의 시기였다.
하지만, 경기일보의 펜 끝은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았다. 깨끗한 지방자치를 위한 감시 기능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갔다. 지방 선거를 혼탁게 했던 ‘금 덩어리 사건’을 특종보도해 부패한 지방정치인들을 무더기로 퇴출시켰다. 지금은 흔하게 인식되는 구제역이라는 질병을 단독 보도해 건강한 사회를 향한 경종을 울렸다. 내 지역 일꾼을 내 지역에서 뽑는다는 주체적 사고 역시 끊임없이 확산시켜 나갔다.
2000년대는 경기일보가 명실상부한 경기ㆍ인천 대표 신문으로 자리매김한 영광의 시기다. 뉴미디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지역민의 곁을 지켰다. 다양한 생활 정보와 발 빠른 신속 보도를 함께 지향해 가며 성숙한 언론의 길을 개척했다. 언론이 아닌 독자의 편에서 세상을 보는 소비자 본위의 신문 제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경기일보의 노력에 독자들은 ‘열독률 1위’라는 사랑으로 답해줬다.
이제 언론 환경은 달라졌다. 미디어 수단이 다양해졌다. 광고 시장도 축소됐다. 내로라하던 유력 언론들도 곳곳에서 무너져 간다. 한국 신문 시장의 총체적 위기라는 암울한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경기일보는 성장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을 키워가고 있다. 기자들 모두의 복지를 키우고 또 키워가고 있다. 어느덧 경기일보는 모두가 일하고 싶어하는 언론이다.
2015년 12월 22일 지령 8천호. 위대한 출발과 고난의 역사를 딛고 달려온 역사의 결과물이다. 경기일보를 사랑해주시는 경기ㆍ인천 지역민에게 더 없는 감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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