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청춘] 35. 안양 나새합창단

“노래 부르며 활력 되찾고 봉사 기쁨도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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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새합창단원이 안양시청 별관 2층 홍보홀에서 열린 송년음악회에서 합창연주를 하고 있다.
“성탄절 선물을 기다리는 손주 녀석들처럼, 합창 연습 날인 월요일과 금요일만 매일같이 기다려지네요” 

지난 21일 오전 10시께 안양시 동안구 안양시 자원봉사센터 내 합창연습장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안양시 자원봉사센터 소속 나새합창단원들이다. 나새합창단(지휘자 윤기훈)은 지난 2006년 ‘나날이 새롭게 합창하고 봉사하자’는 의미의 슬로건으로 창단된 실버합창단이다. 

현재 6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 80여명의 어르신이 활동 중이다. 이 합창단 연습은 월요일과 금요일 이틀에 걸쳐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2시간씩 이뤄진다. 

이날 봉사센터 내 합창연습실을 찾은 그들은 각자 지병을 앓고 있지만 마치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소녀와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날 연습날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몸이 아파도 늦어본 적이 없다고

이순석 할머니(78)는 집이 서울이다. 그래서 이곳 안양 연습장을 오려면 총 2시간에 걸쳐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는 강행군을 치러야 한다. 

이 자체가 여든을 앞둔 이 할머니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지난 6월 말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복귀하던 중 발목을 삐끗한 이 할머니는 합창에 참여하지 못한 이 시간이 오히려 더욱 힘들었다고 말한다. 

오죽했으면 이 할머니는 주변 동료 단원들에게 합창 연습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 보내달라고까지 부탁했을까. 이 할머니는 “단원들이 연습하는 영상을 보고 집에서 혼자 연습했다”며 “부상으로 합창 연습에 참석하지 못한 3주가 내 인생에 30년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영자 할머니(78)도 마찬가지다. 김 할머니는 허리디스크와 무릎 관절염을 호소해 제대로 서 있기 조차 버겁다. 하지만 김 할머니 역시 이 할머니처럼 단 한 번도 지각을 해본 적이 없다. 김 할머니는 “연습날 전날 저녁만 되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매주 합창 연습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왜 그렇게 이들은 이곳 합창단에 속해 연습하고 싶어할까. 이날 만난 단원들은 하나같이 봉사의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새합창단은 일반 실버합창단과는 다르다. 

단순히 어르신들의 취미나 여가활동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찾아가는 위문 연주를 통해 주변 소외받는 가정과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봉사단체다. 그들은 매주 한 번씩 전국에 있는 노인요양원과 보육원, 병원, 장애인센터 등을 순회하며 위문합창공연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 합창단은 자신의 공연을 보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전국 어디든 찾아간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지난해 2명의 치매노인을 위해 1시간 넘게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다. 윤기훈 지휘자(50)는 “사람들은 치매노인들이 우리 공연을 제대로 이해나 하겠느냐며 비웃는다”며 “하지만 그들 역시 노래를 따라부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실제로 우리 노래를 듣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합창단은 어디든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같이 이들의 봉사와 희생정신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들을 기억하고 찾는 기관이 늘어났다. 특히 이들에게 손을 내민 건 안양시 자원봉사센터였다. 

창단한 지 5년이 지난 2011년 안양시 자원봉사센터는 전국적으로 순회공연하며 봉사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고 이들에게 합창 연습장을 무료로 대관해주며 이들을 데려왔다. 

센터 측 관계자는 “이들 합창단은 단순한 합창단이 아니고 소외받는 이웃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합창공연은 어느 봉사활동보다 깊은 감명과 감동을 주는 봉사활동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단원들 모두가 뜻깊은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다며 행복해 하고 있다. 공연하러 갈 때마다 거의 눈물을 흘린다는 배정혜 할머니(77)는 서울삼성병원에서의 공연이 가장 인상깊다고 말했다.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사방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휠체어나 목발을 짚는 등 거동이 불편한 많은 환자가 공연이 끝나자 웃으며 박수를 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배 할머니는 삶에 대한 감사함을 배운다고 한다. 배 할머니는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어르신들이 병원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건강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건강이 닿는 한 계속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순석 할머니는 과천에 있는 승리요양원에서의 공연을 떠올렸다. 이 할머니는 공연을 마치고 몸이 편찮으신 어르신들을 한분 한분 만나 손을 잡는 시간이 싫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손을 잡아 드리며 위로해 드릴 때면 오래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님 생각 때문에 항상 눈물이 나 힘들다”며 “그래도 이들을 위해 위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즐거우니 건강도 좋아져

또 이들 합창단원은 이곳 합창연습을 통해 많이 건강해졌다고 말한다. 이는 특히 윤기훈 지휘자의 독특한 지휘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나새합창단은 다른 합창단과는 달리 공연할 때 악보를 이용하지 않는다. 즉 단원들은 악보의 가사를 완벽하게 외워야 한다. 악보를 보지 않고 공연하다가 일부 단원이 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에는 공연을 망칠 수 있다. 

그러나 윤 지휘자가 9년째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면서, 단원 모두가 매일같이 새로운 곡의 가사를 외워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일부 단원은 단어장을 만들어 이동할 때마다 가사를 외우기도 했다. 윤 지휘자는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가사를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힘들다고 하소연했지만, 지금은 금방 외운다”며 “이렇게 날마다 머리를 쓰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단원들은 자연스럽게 외국어도 할 수 있게 됐다. 암기해야 할 곡 중에는 영어와 이탈리아어, 히브리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들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외국어 가사를 암기하다 보면 기본적인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며 단원들은 이날 기자에게 5개 국어가 가능하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원들이 한뜻으로 즐겁게 연습하다 보니 그들의 실력은 빠른 속도로 늘어 웬만한 프로급 수준의 실력을 보유하게 됐다. 실제로 그들은 국경 없는 의사회 등의 국제단체로부터 초청을 받기도 했으며 지난 6일에는 2015 경기도 재능나눔경연대회에서 상을 받는 등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윤 지휘자는 “봉사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빠져들어 몰입하게 돼 능률도 오른다”며 “노령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 잔잔하고 감동적인 실버문화를 전파하고 싶다”며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영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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