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03년 서울에 있는 자신의 단독주택을 아들에게 물려줬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집에 함께 살며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 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나 다른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A씨 부부는 2층, 아들은 1층에 살았다.
A씨는 주택 외에도 임야 3필지와 주식을 물려줬고, 부동산을 팔아 아들 회사의 빚을 갚아줬다. 하지만 아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 식사도 함께하지 않았고, 허리디스크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 간호는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 도우미가 맡았다.
아들은 A씨 부부에게 요양시설을 권했다. 서운함을 느낀 A씨는 주택을 팔아 부부가 함께 살 아파트를 사겠다며 등기 이전을 아들에게 요구했다. 아들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며 막말을 했고, A씨는 딸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부모를 잘 모시는 조건으로 부동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약속을 어겼다면 재산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자녀에겐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이미 민법상 규정돼 있어 ‘충실히’ 부양한다는 건 일반적 수준의 부양을 넘어선 것이라며, “아들은 단독주택 소유권 이전 등기의 말소 절차를 이행하라”고 했다.
지난 주말 이런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우울했다. 부모 봉양에 각서까지 쓰는 세태가 슬프고, 오죽하면 부모가 소송까지 했을까 씁쓸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ㆍ자식 관계가 점점 이해타산적으로 바뀌고 있다.
증여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최근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냈다 패소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부모들은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아들, 딸의 말을 믿고 재산을 물려줬다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자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다.
그러나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효도 계약’의 물증이 없으면 대개 부모들이 패소한다. 효도라는 추상적 개념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 재산을 좀 더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다.
효도는 계약이 아니지만, 재산을 자식에게 미리 물려줄 생각이면 ‘효도 계약서’라 불리는 각서를 꼼꼼히 챙기는 수밖에 없다. 그게 100세 시대 삶의 지혜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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