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청춘] ‘광교 IT기자단’ 염재준씨

한손에 수첩·펜 들고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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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염재준(67)씨가 기자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지난달 20일 경기대학교 복지관 대강당.

 

파란 점퍼의 사나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손에는 메모장을,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열심히 받아 적는다.그러던 그가 갑자기 단상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들고 찰나의 순간을 놓칠세라 사진을 찍는다. 사실 사나이라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하지만 그 열정이 사나이 못지않다.

광교는 파란 점퍼가 지킨다

상당히 인상적이라 명함을 주고받았다. 어떤 취지에서 그렇게 열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건네받은 명함에는 ‘광교IT기자단 염재준 램블러취재부/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수원시광교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입니다’라는 문구도 함께 쓰여 있었다. 그제서야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더욱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경기일보가 진행한 학술대회서 우연히 만난 그의 모습은 그렇게 각인됐다. 지난 12월 14일 수원시광교노인복지관에서 다시 만났다.

 

3주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파란 점퍼를 입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광교IT기자단’이 적혀 있다. 그리고 여전히 수첩과 펜을 들고 있었다. 수첩에는 정갈하게 쓰인 글씨가 빼곡했다. 그간 그가 취재한 흔적이다.

 

▲ ‘광교IT기자단’ 창단식 모습
그렇다. 그는 ‘기자’다.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기자다. 올해 나이 67세, 40년 교직생활 은퇴 후 3년 전부터 새롭게 하고 있는 일이다.

 

그가 몸담고 있는 광교IT기자단은 수원시광교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단체다. 시니어들의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참여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복지관이 고안했다.

 

“광교IT기자단은 지난해 5월 창단했어요. 복지관 이용 노인의 63%가 고등교육 이상의 고학력자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전문직 종사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그렇듯이 이들도 은퇴 후 무료한 삶을 살아가고 있죠.

 

은퇴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은퇴 했다고 해서 능력이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오래 연륜과 경험이 쌓여있죠. 복지관도 그 같은 생각에서 기자단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때마침 광교신도시의 정보들을 전달할 무언가도 필요했고요. 그렇게 저희 실버기자단이 탄생했습니다.”

▲ 염재준 부장이 규효종 기자와 인터넷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다
기술은 신속 취재의 핵심

현재 기자단은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단을 진두지휘하는 2명의 단장, 기사의 취재와 편집 등 신문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1명의 편집장, 안전·환경을 책임지는 취재1부, 교육·문화를 담당하는 취재2부, 그리고 염 부장이 속해 있는 램블러취재부가 있다. 램블러취재부는 다소 생소하다.

 

“램블러는 GPS 기반으로 사용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 기록해주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이 앱을 이용해 관광과 행사 등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취재기사를 올리는 부서가 바로 램블러취재부죠. 기자님과 처음 만났던 그날도 경기 천년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고 하기에 광교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어 취재를 가게 됐죠.”

 

실버기자라고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친다. 행사 소식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광교신도시 곳곳에 생긴 문제점들을 발견하면 즉시 기사화 한다.

 

실제 광교 원천저수지 근처 빗물을 받는 웅덩이에서 아이들이 장난 치는 것을 보고, 안전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썼고, 수원시에서 즉시 철조망을 설치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사이에 넝쿨식물이 범람해 꽃과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제보에 현장을 확인한 후 기사를 작성, 수원시가 넝쿨식물을 제거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쓴 기사들로 인해 지역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이제는 그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열과 성을 다해 임하고 있죠. 지역 주민들도 알아봐 주시고 많은 취재요청과 제보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된 인생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기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지역의 소식을 전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올해만 해도 80건의 기사를 올렸다. 불과 3년 전만해도 허탈감에 휩싸여 있던 그였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쳤죠.

 

평생을 학교에서 아이들과 보내다가 막상 명퇴라는 것을 해보니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수원시종합자원봉사센터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고,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죠.

▲ 염재준 부장이 ‘광교IT기자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자단에 대해 알게 됐고, 이렇게 부장까지 하게 됐습니다.”

새로 주어진 이 일이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어요. 명함을 내밀 때 ‘이게 뭐지’하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도 됐고요. 4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지만, 막상 사회라는 곳에 나오니까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더라고요.”

그에게 은퇴세대를 위한 조언이 있는지 물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은퇴자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다 비슷해요. 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 은퇴자들도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해야 합니다. 등산이나 여행만 다닐 것이 아니라 꾸준한 자기개발을 해야 합니다.”

글 = 송시연기자 사진 = 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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