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의 일이죠. 황색의 상징은 부와 힘, 영광을 뜻하더군요. 또 이 색은 상쾌함, 찬란함, 즐거움, 설레임의 느낌을 준다고 해요. 그리고 이 색의 메시지는 ‘함께 어울리고 싶다’이고요. 참 좋은 의미가 많네요. 그렇게 정해진 뜻이 아니더라도 저 스스로도 황색의 이미지를 좋아했으니 더불어 기운이 솟네요.
살아오면서 저는 예부터 그렇게 어떤 상징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왜 사람들은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하는 것이죠.
이미지에만 그런 게 아니죠.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처럼 동식물은 물론 온갖 사물들에게까지 상징적 서사와 신화를 부여했잖아요. 그런데 말예요. 저는 그런 ‘부여’의 형식과 의미에 인류가 깨달아야 할 오래된 지혜 같은 것이 있다고 봐요.
황색은 노란 빛의 상징이기도 해요. 노란태양처럼. 광명처럼. 그래서 그것은 황제ㆍ왕의 색이었죠. 제왕의 상징은 용(龍)이어서 황용이야말로 임금의 공간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상징체계였어요.
올해는 붉은 원숭이래요. 올해 태어난 아이들은 붉은 원숭이의 상징을 얻겠죠. 붉다는 것 또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자, 그런데 그렇다고 저 황색의 뜻과 상징이 모두 황색 원숭이로 태어난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닐 거예요. 우리의 초상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역사에서 완성될 것이 분명해요.
저 상징들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닌 것이죠. 저는 지금 상투 튼 남자를 보고 있어요.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남긴 신체 증명사진을 작가가 한 남자의 ‘초상’으로 그린 것인데, 저 초상을 보면서 한사람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 거예요.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밝은가요? 어두운가요? 회색인가요? 제가 ‘나’를 생각하고 살면서 늘 고민하는 것은 내 안의 밝은 존재성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내 안이 밝다는 것이야말로 신명이니까요. ‘2의 초상’은 이름이 없는 존재예요. 존재는 ‘존재자’를 드러냄으로써만 주체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어요. 존재의 독립과 존재의 해방은 내 안에 있는 빛을 터트려야만 가능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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