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김인순 ‘현모양처’

남성 중심 가치관 속 여성의 현실 풍자

1985년 10월에 한국에서는 첫 여성주의 작가 그룹이 탄생했어요. 우리가 흔히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는 그 여성주의 말예요. 10월에 탄생했기 때문에 ‘시월모임’이었죠. 이듬해 10월에 두 번째 기획전 ‘반에서 하나로’라는 전시를 열었는데 장안의 화제가 됐죠.

당대 여성의 문제를 회화로 제시했으니까요. 그것도 아주 날카롭게. 그 중 저는 오늘 김인순 선생의 ‘현모양처’를 소개할까 해요. 아래는 실제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에요.

 

김종길 : 사실 ‘반에서 하나로’의 아주 대표적인 작품은 따로 있잖아요. 가장 많이 연구되는 것이 ‘현모양처’ 맞죠? 이 작품은 색도 독특한 것 같아요. 마치 크로키하듯 그려졌고요. 밀도 있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약간, 그렇지만 주제의식은 너무나 명료하고 말예요. 화면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굉장히 현대적인 미감을 보여주죠. 새로운 형식미학이랄까. 그런 실험들도 저는 독특하게 보이더라고요.

 

김인순 : 그 작업이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어요. 여성학 하는 교수들, 그러니까 연세대의 조한혜정 씨라든지 여성학 하는 교수들이 그 때 아주 깜짝 놀라워했죠. 우리가 또 그것을 엽서로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그 엽서 그림을 가지고 미국 여성학 회의에 간다든지 할 때 그것을 가져가고 그랬어요. 거기서도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김종길 : 놀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실은 다들 인식은 하고 있지만 그것을 미학적으로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 발 씻는 그림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 것들을 문학에서는, 여성들의 문제의식을 다루는 소설들에서조차도, 사실 표현의 방식이 너무나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이어서 그 안에 갇히는 경우가 많고, 또 맥락이 너무 중층적이어서 읽히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데, 사실 선생님 작품들은 그 상징이나 은유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읽히기 어려운 것도 아닐 뿐더러 아주 단박에 읽히고 상징도 큰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김종길 : <반에서 하나로>라는 제목의 탄생 장면도 떠오르세요?

김인순 : 서로 회의를 했죠. 그게 그 때 여성학이 새로 막 들어올 때인데 저희도 막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됐어요. 중국에 ‘하늘의 절반’이라는 여성팀이 있었어요.

 

김종길 : ‘하늘의 절반’이요? 미술팀 인가요?

김인순 : 미술팀은 아니고 여성운동 쪽 일거예요. 아마 중국의 여성운동 팀인지 아니면 그냥 여성들 팀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여성학에서 등장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언뜻 이미지가 떠올라서 ‘반에서 하나로’를 제가 말했더니 깜짝 놀래가지고 모두 그럼 그걸로 하자 그렇게 된 거지.

 

‘반에서 하나로’ 이후 30년이 지났어요. 1980년대 후반부터 치열하게 전개된 여성주의 운동은 현재,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여성의 위상과 역할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현모양처의 인식도 바뀌었고요. 오히려 21세기의 새로운 시대는 여성이 주도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남성성의 문명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죠.

 

김종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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