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논단] 우리는 좀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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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비기업을 없애야 한다” 언젠가부터 언론에 등장한 좀비기업이라는 말이 이제는 저녁 술자리에서 나누는 시사토론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좀비기업은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에 가야 할 사회적 자원을 가로챔으로써 나라 경쟁력을 갉아먹는 사회의 적’이므로 빨리 퇴출시켜야 그나마 힘든 경제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철렁하고 싸아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게는 2008년도 금융위기 이후 아직도 힘을 못쓰는 친구, 창업한 지 십년이 지나도록 크게 성공하기는커녕 사무실도 조금씩 줄이고 아파트도 전세로 옮기는 동창생이 있다. 직원보다도 적은 연봉을 가져가면서 IT기업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직원들도 주말마다 나와서 일하는 회사, 직원들 이름까지 내가 알고 있는 그 회사가 ‘사회의 적’, 곧 나의 적이 되었다는 논리의 결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좀비기업의 기준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기업이 해당된단다. 이자보상배율이란 영업이익을 이자로 나눈 비율, 즉 빌린 돈으로 장사를 해서 이자를 갚을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이다. 3년 연속으로 이자조차 갚을 능력이 없다면, 향후에도 자체적인 생존능력이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는 이자보상배율이 1.5 이상이면 안정적이라고 본다고 한다. 그러면 내일모레 대박이 나서 일순간에 이자보상배율이 1.5가 아니라 열배인 15로 뛰면 좀비기업이 하루아침에 챔피언 기업이 되기라도 하는가? 나아가 회계 처리방식에 따라 영업이익 수치를 일이년 동안 근사하게 보이도록 유지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좀비기업’의 기준이라는 것이 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편의주의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과연 그 회사의 경영진 이하 직원들이 정말 회생노력 없이 베짱이 같이 정부지원금 따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지, 그 업계에서는 도저히 기술력이 없어서 살아남을 수 없는지 등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더욱 중요해 보이는 평가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기업의 내부 사정을 조금이라도 조사해서, 현장에 가서 얘기라도 들어보고 과연 이 기업이 정말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지 결론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람이 죽었다’하면 보통 일이 아니며, 더구나 ‘사람을 죽였다’하면 범죄이고 수사대상이다. 사회의 구성원인 기업에 대해서도 ‘이 기업은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고, 회생 가능성도 없으니 퇴출이야’ 하는 판단을 섣불리 내릴 수 있을까? 병상에 있는 환자의 호흡기줄을 떼어내는 것은 중요한 범죄이다. 

기업에 대해서도 직장이 문을 닫고, 사원들이 실직자가 되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가? 만일 그 회사의 사장과 직원들이 똘똘 뭉쳐 살아나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 열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열정의 불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살려내지 못하면 지방의 중소기업은 앞으로 순서대로 위험하고, 지방 경제도 살아날 길이 없을지 모른다. 

90년대 말에 발생한 닷컴 붕괴와 외환위기, 2004년의 키코사태, 2008년의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 외에도 끊임 없는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속에서 개별 기업이 죽고사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너무 둔감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금융기관이나 정부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금융기관은 이러한 부실기업들을 계속 끌고가다가는 스스로는 물론 금융시스템이 위험해질 수 있고, 정부도 경제 위기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한시가 급하고, 엄중한 잣대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칼과 죽이는 칼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들여다 보고 환부를 잘라내는 칼은 생명을 살리는 칼이고, 그냥 목을 내려치는 칼은 생명줄을 끊는 칼이다. 기업의 퇴출 여부를 결정하려면, 퇴출 기준에 대한 공감대를 얻는 사회적 대타협을 먼저 구축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별 기업의 퇴출 여부는 기업의 회생의지와 역량을 고려하는 세심한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그 기업들이 당장은 문을 닫더라도, 다음에 또 일어설 수 있는 씨앗을 품지 않을까 한다. ‘좀비기업’이라는 용어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둡고 칙칙하고 절망적인 이 이름을 다른 희망적인 이름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박인수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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