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지켜주는 디지털 장의사
인터넷의 발달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으로 정보의 전달과 접근이 쉬워졌다.
이에 따라 개인의 신상정보가 빠르게 유통돼 악용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등장한 직업이 ‘디지털 장의사’다.
디지털 장의사는 개인이 원하지 않는 인터넷 기록이나 죽은 사람의 인터넷 흔적을 정리해주는 사람 혹은 기업을 의미한다.
디지털 장의사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신규 직군으로 고용노동부에 접수돼 곧 정식 직업으로 발돋움할 예정이다.
디지털 장의사의 일은 전부 수공업으로 진행된다. 삭제 대상 정보들의 위치(URL)를 파악하고 나서 일일이 삭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글 등 검색엔진을 활용한 키워드 검색이나 자체 개발한 ‘크롤러(무수한 컴퓨터에 분산 저장된 자료 중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긁어오는 프로그램)’를 활용한다. 위치를 특정해야 자료 관리자를 상대로 삭제를 요청할 수 있어서다.
찾아낸 정보 중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추려내고 나서 의뢰인을 대리해 삭제요청을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디지털 장의사가 생소하지만,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온라인 상조회사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이 지난 2008년부터 사망한 사람이 남긴 인터넷 흔적을 지우는 사업을 시작했다. 가입비용 약 300달러, 매년 24달러를 내고 등록하면 사망 후 자동으로 회원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쓴 글 등을 지워준다.
이처럼 사망한 사람의 인터넷 정보가 악용되는 것을 막고자 등장했던 디지털 장의사가 이제는 잊혀질 권리가 주목받으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정보를 지우는 데까지 확산됐다.
잊혀질 권리는 지난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확대되고 있다. 당시 한 스페인 출신 사람이 채무 문제로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내용의 기사를 구글 검색에서 삭제해달라는 주장에서 잊혀질 권리의 논쟁은 시작됐다.
이 요구에 대해 법원이 인터넷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개인정보를 삭제해달라는 요구를 인정하면서 업계 관심이 쏠렸다. 판결 후 구글은 6개월 만에 19만1천233건 정보(URL) 삭제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디지털 장의사가 낯설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이버 강국이지만 개인 정보의 유출로 말미암은 문제와 그 때문에 야기되는 2차, 3차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 무감각하다.
특히 법적으로 온라인에서 잊혀질 권리를 사업화하기까지 다양한 쟁점들이 뒤따르고 있어 단기간에 관련 산업이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이 온라인 상의 자기 정보를 통제하고 삭제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인정하고 있지만, 당사자가 죽으면 누구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잊혀질 권리에 대한 국내 논의가 더딘 가운데 강원도가 지난해 최초로 ‘잊혀질 권리 확보사업 지원 조례’를 마련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강원도민의 잊혀질 권리를 확보하고자 시스템을 도입하고 비용을 지원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 전문업체 즉 디지털 장의사와 협약을 체결할 수도 있도록 했다.
이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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