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지난 1월 11일 전국회의원이나 KBS 앵커 출신인 류근찬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쏟아낸 발언이다.
막말 논란이 벌어진 것은 물론 여성비하 발언이라는 반발에까지 부딪치자 류근찬 전의원은 논쟁을 접었다. 하긴 류의원 자신도 지금은 없어진 자유선진당에서 국회의원을 했고 안철수의원과 함께 ‘새천년 민주연합’ 충남도당 공동위원장을 했으며 지금은 박준영 전전남지사가 이끄는 신민당의 공동 부대표로 있다. 복잡한 정치역정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해프닝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안쓰러운 우리 한국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자 포장은 다르지만 비슷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전두환의 국보위 시절엔 국보위에 참여하고, 이 당, 저 당에서 네차례나 비례대표를 한 사람. 심지어 박근혜대통령 당선에 역할을 맡았다가 지금 그 대치점에 있는 문재인 진영으로 가 있는 모습, 특히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수감되기 까지 했는데….
이와는 별도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끝없이 계속되며 서로 헐뜯고 물어뜯는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정당도 비누방울처럼 만들어졌다 사라지길 거듭하고 있는데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무로 14개나 된다. 이 숫자는 우연히도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서 탄생한 13개 정파 숫자와 비슷하다.
1948년 5ㆍ10 선거를 거쳐 구성한 제헌의회의 정파를 보면 이승만이 총재로 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가 전체의석의 27.5%인 55석을 차지했고 한국민주당이 29석 등이었다. 남한만의 선거에 반대했던 김구는 이승만과 같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부총재였지만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정파와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매일같이 싸움으로 지새는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미점령군 사령관 존. R. 하지 장군이었다. 많은 정파와 싸워야 했던 하지 장군은 특히 이승만과의 관계에서도 엄청 속을 썩여야 했다.
오죽했으면 그는 훗날 한국에서의 미군정 책임자로서 3년을 회고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맡았던 자리 가운데 최악의 직무(worst job)이었다.’고 했을까? 그리고 그는 1948년 8월 24일 해방 후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대한민국의 탄생이 이루어지자 한국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겼다. “남한에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정치가들이 있다.
모두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오로지 한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합심 노력해야 한다….”(차상철교수의 ‘이승만과 하지 장군’ 中)
물론 해방의 기쁨 속에 나라를 세운다는 한가지 목표에 모든 지도자들이 합심할 것으로 생각했던 하지로서는 서로의 불신과 증오, 분열과 민족지도자의 암살 등을 보면서 그가 겪어야 했던 3년의 세월은 잘못된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246개의 국회의원 선거구가 모두 사라져버린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서 그리고 여전히 정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하여 이미 세상을 떠난 하지 장군이 또 다시 한국에 와 이 꼴을 본다면 같은 말을 되풀이할지 모른다.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적 정치가를 탓하고 개인적 야심을 버리라.”고….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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