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영입이면 ‘저승사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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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김대중 전대통령)의 삼남 홍걸씨가 더민주당에 입당한 것을 계기로 동교동계 인사들과 실랑이가 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당’도 가세했다. 지난달 24일 ‘국민의당’ 모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홍걸의 입당은 망한 백제의 부흥운동을 보는 것 같다’고 한 것.

 

그는 김홍걸씨를 앞세워 친노 부흥을 꾀하는 꼴이며 문재인 당시 대표를 백제 부흥운동의 큰 축이었던 복신에 비유, ‘김홍걸을 부여풍처럼 앞세웠다’고 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이 ‘흑치상지’라는 명망있는 장군과 손잡고 처음에는 활발히 전개됐으나 결국 내분으로 실패한 내역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당직자가 왜 백제의 비극적 종말을 현실 정치 상황에 접근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교훈은 곱씹어 볼 만 하다.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의자왕과 왕자 융을 비롯 관료와 군인 등 2만명 상당의 많은 백제인들이 당나라로 잡혀갔다.

그럼에도 의자왕의 종형제되는 복신, 승려 도침, 장군 흑치상지 3인이 중심이 되어 일본에 가있던 왕자 풍을 모셔와 부흥운동을 펼쳤다. 특히 유능한 장군 흑치상지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있는 임존성을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10일만에 3만명의 병력을 확보하며 사기가 충천했다.

 

흑치상지와 복신 등이 이끄는 부흥군은 이후에도 2백여 성을 회복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복신과 도침 사이에 반목이 생겨 복신이 도침을 살해했는데, 내분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왕자 풍이 복신을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도부의 알력과 내분이 계속되자 금세 ‘잃어버린 백제’를 되찾을 듯한 기세가 꺾이고 왕자 풍은 고구려로 도망갔다. 왕자를 모셔오면 큰 힘이 되리라 믿었던 백제 유민들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그런가하면 흑치상지는 백제 진영을 버리고 당나라에 항복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창 끝을 자신의 지휘 하에 있던 백제 부흥군을 향해 던지는 엄청난 배신을 저질렀다.

 

당나라로 잡혀갔던 왕자 융은 지금 공주 땅에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의 꼭두각시 도독이 되었으니 4년에 걸쳐 몸부림치던 백제의 꿈과 희망은 한꺼번에 꺼져 버렸다. 심지어 흑치상지는 당나라에서 최고위직에 올랐으나 오래지않아 모함을 받아 목숨까지 잃었다. 이것이 한때 백제 회복의 황금같은 기회를 놓쳐버린 ‘백제 부흥운동’의 내막이다.

 

어디 이 꼴사나운 모습이 백제에 한정된 것인가.

몸 담았던 자기 진영을 버리고 적의 품에 안겨 함께 했던 진영에 창을 던지는 흑치상지 같은 정치 지도자가 없는가?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왕자 풍이 복신을 죽이는 것과 같은 내분으로 ‘나라 되찾기’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해(自害) 행위를 하는 정치 지도자는 없는가?

 

최근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을 파는 정치는 쉬운 정치”라며 과거 지도자의 깃발을 들고 완장을 차는 오늘의 정치 풍토를 개탄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며 분연히 일어선 백제 지도자들이 의자왕의 아들을 일본에서 불러 오기까지 했지만 결국 내분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린 역사적 교훈과, 김병준 교수가 지적한 과거 지도자의 깃발을 들고 정치를 하려는 오늘 우리 정치판에 대한 경고는 그래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수호천사가 될지, 저승사자가 될지 가리지 않고 영입 전쟁을 벌이는 여야. 그리고 대통령의 아들들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한국적 정치 후진성은 벗어 던져야할 때가 됐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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