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바꾸자] 5. 긴급차량에 길 터주기

1분 1초 급한데… 사이렌 켜도 묵묵부답
촌각 다투는 구급차량 환자 이송 ‘골든타임’ 5분안에 병원 도착해야
미국선 안비켜주면 벌금 수십만원 양보가 아닌 의무사항… 협조 필요

수원시 우만동에 사는 L씨(48·여)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평소 간암 지병이 있던 어머니(75)가 18일 오전 10시께 집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119에 신고했는데,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이송 도중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서다.

 

집에서 불과 2㎞가량 떨어진 병원까지는 평소 5분도 안 걸리던 것이 이날만큼은 도로가 차들로 사방이 꽉 막혔기 때문이다. 사이렌을 크게 켜도 길가의 차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어머니를 태운 구급차가 집에서 병원도착에 소요된 시간은 15분. 의식을 잃은 환자의 통상적인 골든타임이 5~10분인 점을 감안하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다행히 담당의사로부터 “5분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L씨는 “그 짧은 거리에서 옴짝달싹 못했던 15분의 시간이 마치 15년 같았다”면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영상인 도로에서 구급차 길 터주기 영상은 모세의 기적과도 같았는데 이는 그저 다른 사람 이야기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도로에서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차량을 만날 경우에는 길 터주기를 해야 한다.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긴박한 상황인데, 여전히 실생활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골든 타임인 5분 안에 병원에 도착해야 응급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서 “구급차 길 터주기는 양보가 아닌 의무사항으로 느껴야 하며 도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길 터주기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강한 제재를 통해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도로교통법상 접근하는 구급차에 대해 진로를 양보하지 않으면 10만원 수준의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그 수준이 경미하다는 것. 민세홍 가천대학교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긴급차량에 대해 양보 의무를 지키지 않을 시 미국은 벌금이 80만~90만원을 부과하는 등 그 강도가 세다”며 “‘구급차 길 터주기’문화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미국처럼 강한 제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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