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면 으레 뒤따르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검찰은 공기업 KT&G 사장을 지낸 민모씨가 중동의 담배업자로부터 4500만원 상당의 시계(파텍필립)를 받은 혐의가 드러나 기소했다. 민 사장은 이렇게 받은 시계를 노조위원장에게 선물로 줬다. 왜 노조위원장에게 그 고가의 시계를 주었을까? 무슨 검은 거래가 있었을까?
시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야기지만 몇 년전 모 재벌회장이 당시 국세청장 J씨에게 30만 달러 뇌물과 함께 4200만원 상당의 시계를 바쳐 충격을 주었다. “어떻게 국세청장이…”하는 놀라움이 컸다.
곳곳에서 썩는 냄새는 이제 비리 불감증지경에 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7일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 국회의원이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에게 “방산 비리의 대표적인 사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때 장 청장은 “글쎄, 하도 많아서…”라고 대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의 대답은 솔직했지만 국민들은 가슴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글쎄, 하도 많아서…”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원자력 발전소의 부품은 매우 중요해서 완벽한 품질이 생명이다. 만약 불량 부품을 사용하다 사고라도 나면 이건 엄청난 재앙을 가져 온다. 국민의 귀중한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량기자재 납품으로 수십억 원대의 뇌물이 거래돼 한국 수력원자력 관계자 153명이 처벌을 받았다. 임원도 먹고, 부장도 먹고… 주차장에서, 사무실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뇌물을 먹었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불량 자재 납품대가였다. 이런 자들은 영혼은 고사하고 공직자로서의 양심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을까?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최근 공직사회를 잔디밭에 비유하면서 물도 주고 ‘잡초’도 뽑겠다고 했다. 또한 2013년 4월 폐지됐던 검찰의 ‘대검 중수부’ 대신 ‘부패범죄 특별수사단’이 출범했다. ‘잡초’를 뽑아내자면 사정 바람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과 공무원 등 공직비리와 대기업, 그리고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을 주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미 방산비리 수사에서 수사력을 인정 받았던 김기동 검사장이 칼을 잡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수사실력이 높은 검사와 수사관들이 차출되어 철통같은 체제도 갖추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공직자의 애국심과 양심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엄청난 방위산업의 비리에 뇌관을 터트린 김영수 해군 소령을 생각해야 한다. 그는 양심선언을 통해 말썽 많은 통영함의 비리를 신고했으나 묵살됐고 군내 ‘부적응자’,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전역 조치 당했다. 당시 해군 참모총장은 공개적으로 김소령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부인하고 인격적 매도를 가했다.
김소령이 조직 내에서 겪어야 했던 고초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는 사태가 역전돼 보국 훈장 삼일장을 받았으며 참모총장은 구속되고 말았다. 따라서 잔디밭을 잘 가꾸고 잡초를 뽑으려면 김소령과 같은 애국심과 양심있는 공직자가 계속 나와주어야 한다. 반환점을 돈 박근혜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생각할 때 공직기강 확립이야 말로 가장 절실한 과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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