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고종 승하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ihju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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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은 비운의 고종(高宗) 황제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이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은 승하하셨다. 사인을 놓고 와병설과 일본인 독살설이 현재까지도 팽팽히 맞서고 있으나 그의 나이 56세로 전날 밤 식혜를 들고 침소에 들었다가 불과 30분 만에 승하했고 그 식혜를 들인 나인 2명이 의문사를 당한 것에 비춰보면 독살설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12살에 즉위한 고종황제가 44년간의 재위를 마치고 승하하자 조선은 이후 3년 만에 일본에 강점되는 비운을 맞았다. △엊그제 1일은 97주년 3ㆍ1절이었다. 3ㆍ1 독립만세 항쟁은 고종황제의 승하와 연관이 깊다. 조선반도 일부 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봉기 됐던 만세운동이 바로 고종황제 장례식에 맞춰 한민족 항쟁으로 규합된 것이다.

 

일제의 만행에 숨죽이고 있던 조선 민중이 일제히 들고 일어섰다. 류관순 열사는 일제 순사의 만행에 항변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그 울분을 참지 못해 밤새 3천 장의 태극기를 그려 천안 아우내 장터 상인들에게 나눠주며 거룩한 민중항쟁의 불을 지폈다.

 

△3ㆍ1독립만세 항쟁에 놀란 일제는 1919년 4월 15일 아리다 육군중위가 이끄는 한 무리의 군경을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화성 제암리로 보내 기독교도·천도교도 30여 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뒤 문을 잠그고 집중 사격을 퍼붓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불을 지르는 더욱 악독한 만행을 저질렀다.

 

이 만행에 분노한 선교사 스코필드는 당시 참혹한 광경을 그대로 사진에 담아 ‘수원에서의 일본군 잔학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미국으로 보내 여론화했으며, 지난 1982년 문화공보부는 제암리 학살현장의 유물발굴과 조사에 착수, 그해 10월 21일 이 지역을 사적 제299호로 지정했다.

 

△3월은 이렇게 한민족에게 잊지 못할 아픈 달이다. 엊그제 우리는 그 아픔을 딛고 독립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선조들을 기리며 독립을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가졌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것은 상당수의 민중이 그저 3월 1일을 노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고속도로 정체가 이를 방증한다. 애국(愛國)에 시간이 따로 있을 수는 없겠지만, 3월 한 달만이라도 개개인이 가슴에 애국을 새겨보길 바라본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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