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오지를 가다] 메마른 땅에 희망거름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학창시절 책상 위에 빵 모양의 노란 저금통이 올려질 때면 ‘동전으로 꽉 채워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정작 저금통을 걷는 날이 오면 나는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고 매점으로 가 십 원짜리 동전으로 몽땅 바꿨다. 적은 금액으로 많이 채우려는 일종의 꼼수(?)였달까. 교실에는 저금통을 지폐와 동전으로 가득 채운 친구도, 반도 채우지 못 한 저금통을 부끄러운 듯 내는 친구도 있었다. 모아온 금액은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두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 바로 그 마음이었다.

 

직장인이 되고 2년 만에 월드비전을 통해 케냐에 사는 여자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후원이 3년 째다. 매월 27일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3만원의 후원금을 보며 ‘3만원이면 밥 한 끼를 사먹었겠다’ 싶다가도, ‘밥 한 끼 안먹어도, 이 돈이 없어도 나는 사니까’라고 고쳐 생각한다. 그리고 학창시절 저금통을 낼 때의 마음을 떠올리고 케냐에 있는 나의 딸 아이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지금도 노란 저금통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하면 많이 모은 것처럼 보일까’라는 궁리를 하는 학생이 있다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 수 있는 3만원의 후원을 망설이는 직장인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일단 손길을 내민다면 누군가의 행복이 됨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우리의 진심이, 후원의 손길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는 기적을 5박6일 간의 월드비전 베트남 모니터링에서 확인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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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 쾅트리시 바낭(Ba Nang) 꼬뮨의 아이들이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깨끗한 물 한 모금으로 되살아날 웃음

베트남 중부 쾅트리시에서 가장 가난한 다크롱(DA Krong) 지역. 다크롱은 쾅트리에서 가장 빈곤한 곳이다. 다크롱에는 3만9천534명의 인구가 살고 있어 인구 밀집도가 매우 높다. 다크롱의 빈곤율은 30.56%로, 쾅트리시의 빈곤율 9.42%에 비해 매우 높다. 사람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 현지 월드비전 직원의 설명이다.

 

다크롱 지역의 5세 미만 아동은 1만3천여명으로 다크롱 인구의 35%에 달하지만 아동을 위한 교육, 보건 등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우선 학교가 매우 부족하고 먼 거리에 위치하여 우기에 등교하기 어렵다. 교실의 부족으로 여러 학년이 한 공간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며 부모들이 생활에 급급해 아이들의 교육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의 베트남어 읽기평가 통과율은 50%에 그치는 실정이다.

 

아동 보호에 대한 인식 자체도 부족하다. 삶의 환경이 안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동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아동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신체를 보호해야 하는 가치와 판단 능력을 길러주지 못해 각종 사고로 죽는 아이들도 매우 많다.

 

특히 이들은 여기저기 방치된 쓰레기와 투기물, 화장실이 열악해 길 곳곳에 노상방뇨를 하는 생활 환경 등 때문에 깨끗한 물을 섭취할 수 없다. 하루에 필요한 15L의 식수를 30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주민이 10%밖에 되지 않아 각종 수인성 질병이 만연하다.

 

이날 월드비전 모니터링단이 찾은 바롱(Ba Long) 꼬뮨의 바롱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산악지대에 위치해 매년 홍수를 겪는다. 마땅한 식수 시설이 없어 바롱 꼬뮨과 인근 다노이, 반다노이 마을 등 9개 꼬뮨 주민들은 깨끗한 물을 구하기 조차 매우 어렵다. 학생들은 먼 거리를 걸어 물을 뜨러 가느라 학교에 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설사, 폐렴 등의 증상도 달고 살다시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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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 잉히(Huc Nghi) 초등학교가 지어질 훅 잉히 꼬뮨의 학생들이 월드비전 모니터링단과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 때문에 바롱 초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될 식수 시설에 대한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의 기대감은 매우 크다. 식수 시설로 깨끗한 물을 섭취할 수 있기도 하지만, 학생들이 물을 기르는 시간에 더욱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월드비전 경기지부(경기남, 경기북, 경기동, 경기서)는 한국 후원자들의 후원금 6천500여만원으로 이곳 바롱초등학교 운동장에 2개의 우물을 파고, 22~25m 높이의 탑 위에 물탱크를 설치할 계획이다. 또 우물에서 전기펌프로 물을 끌어 올려 2개 마을 가호로 연결하는 수도관을 설치해 물탱크에서 수도관을 통해 가호로 식수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날 바롱 초등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주민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학교 정문에서부터 강당까지 이어지는 운동장에 일렬로 줄을 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흰 블라우스에 파란 하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바닥이 시멘트인 운동장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모니터링단의 방문을 환영했고, 식수 시설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다.

 

■ 학교와 함께 피어날 희망과 행복

다크롱시 훅 잉히(Huc Nghi) 꼬뮨은 소수민족 7만여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훅잉히 꼬뮨은 다크롱 지역에서 가장 빈곤한 꼬뮨으로 주로 소수민족 중 하나인 반키우(Van Kieu)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저지대에 살던 이들은 지난 2009년 홍수로 인해 마을 전체가 잠겨 마을을 잃었다. 이후 높은 땅으로 이주해 강을 따라 살고 있다. 훅잉히 마을 내 초등학교 학령기 아동은 165명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업을 받을 초등학교가 없어 2~3km의 거리를 걸어 임시학교로 통학하고 있다. 장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문제로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 출석률이 매우 저조하고, 특히 우기에 먼 거리에 위치한 임시학교로 등·하교하며 익사, 교통사고, 천둥 및 번개 등의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 때문에 지역 교육부는 지난 5년간 이 지역의 초등학교 건축을 계획하고 중앙 정부에 요청했으나 예산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임시 학교를 찾았다. 임시 학교는 옆 마을의 남자 중학교를 빌려 사용하고 있다. 60년 전 이탈리아의 한 단체에서 지어준 이 학교는 2층짜리 건물 두 동에 6개의 교실이 있었다. 조그마한 교실 벽은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져 있었고 천장에는 선풍기 한 대만이 돌아가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의 열악한 교실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책걸상은 너무나 컸다. 책걸상이 중학생들에게 맞춘 크기이기 때문에 체격이 작은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 인해 초등학생들은 시력 저하와 척추 질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더욱이 베트남 교육 정책상에는 오전에는 주요 교과목들에 대한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독서, 생활기술교육, 미술 등의 교과목들 수업을 받도록 돼있지만, 훅잉히 마을의 학생들은 교실 부족으로 오전에는 초등학생이, 오후에는 중학생이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어 교육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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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없어 임시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훅 잉히 꼬뮨의 학생들

교사들의 현실도 열악했다. 훅잉히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교육 기자재 부족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그나마 정부가 지원하던 공책과 연필마저 지원이 끊겨버렸고, 수업을 위한 기본 자료마저 선생님들이 손수 만들어 사용한다. 여러 소수민족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보니 모두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의사소통의 문제도 존재한다. 또 먼 거리로 통학하느라 학생들의 등교율이 매우 낮지만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학교로 오게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선생님들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훅잉히 꼬뮨의 교육환경개선을 위해 나선 것은 바로 한국의 후원자들이다. 올해 경기도를 기반으로 한 월드비전은 기업이나 교회, 학교 등의 후원금으로 이곳 학교에 변화를 선물할 예정이다. 2억4천여만원의 후원금으로 지어질 훅잉히 마을 내 초등학교에는 교실 5개와 교무실, 화장실 2칸과 식수시설이 들어서 훅잉히 마을 내 초등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 개선을 통한 아동 복지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크롱 지역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위원회장은 “다크롱 지역에 지어질 학교와 식수시설은 한국의 후원자와 월드비전의 돈이 아닌 마음과 사랑으로 지어지는 것이므로, 이곳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감사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면서 “더욱 나은 여건에서 더욱 많은 아이들이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예나기자 

     

월드비전(World Vision)은

월드비전은 전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1억명의 지구촌 이웃을 위해 구호 및 개발, 옹호사업을 진행하는 국제구호개발 NGO다. 한국전쟁 당시 설립된 월드비전은 목사이자 종군기자였던 밥 피어스가 전쟁통에 거리에서 죽어나가는 어린 생명을 돌보고자 시작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의 역사적 전환을 이뤄냈으며, ‘사랑의 빵’, ‘기아체험 24시간’등의 자체적 모금활동을 통해 국내 어린이뿐 아니라, 제3세계 어린이와 북한의 어린이까지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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