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구보건소에서 주안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막국수 집이 하나 있다. 비록 좁고 허름한 집이지만 10년 전통을 자랑하는 나름대로 맛집이다. 여름에는 줄을 서야 먹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올 겨울은 개업 이후 최악의 혹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1, 2월에는 온종일 한 그릇도 못 파는 ‘빵 치는 날’까지 종종 있었다. 찬 음식인 만큼 겨울철 손님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빵 치는 날’은 올 겨울이 처음이다. 자동차 매장이라면 모를까 막국수 맛집에서 ‘빵’이라니….
막국수 집 사장님의 남편은 40년 경력의 헤어 디자이너로 헤어 관련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둘째 아들 역시 15년차 헤어 디자이너로 지난해 예약 전문 헤어 샾을 창업했다. 큰아들은 3년 전 129 민간 구급차를 구입해 환자 응급 이송 일을 하고 있다. 가족 4명이 모두 전문직종 사장인 셈이다. 말 그대로 자영업 가족이다.
동네 사람들은 가족이 모두 ‘사장님’이니 그 번 돈을 다 어디에 쓰느냐고 부러워들 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속 터지는 소리들이다.
막국수 집은 가계세와 난방기 내기에 급급하다. 올 겨울 같아서는 당장 문을 닫고 싶은 심정이지만, 다가오는 봄 소식에 간신히 마음을 달래본다.
남편의 헤어 업소도 언제부터인지 손님 구경 하기가 쉽지 않다. 큰아들은 2년차인 지난해 구급차를 3대로 늘리며 자리를 잡는 듯싶더니 최근에는 덤핑 민간 구급차들이 등장해 다시 고전 중이란다. 둘째 아들의 헤어샾도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이 가족의 경력만 합쳐도 68년이다. 이 정도라면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림 걱정 정도는 하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퇴직에 떠밀린 얼떨결 창업도 아니고…. 경기 불황이라는 피할 수 불청객 탓이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으로 잘 살 수 있으려면 몇 년의 경력이 필요할까. 정부가 부르짖는 창업을 통한 좋은 일자리는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생계형 창업 10년 생존율 16.4%’라는 마의 벽까지 넘었지만,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먹고사는 걱정을 해야 할까라는 궁금증이 절로 생긴다. 대한민국에서의 자영업이란 멀고도 험한 끝없는 고행처럼 느껴진다.
잘 아는 가족이기는 하지만 허락 없이 적은 글이라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혼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혹시 이 가족이 글을 보더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유제홍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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