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판 양적 완화, 새누리당의 공약이긴 한가

새누리당이 지난달 29일 ‘한국판 양적 완화’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채권을 인수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한은이 조율하겠다는 뜻이다. 또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증권을 직접 인수토록 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경우 주택담보 대출 상환 기간을 20년 장기 분할로 크게 연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새로 영입한 강봉균 공동 선대위원장이 내놓은 사실상의 첫 공약이어서 더 주목을 끌었다.

공약은 ‘한국판 양적 완화’로 받아들여지면서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당장 반응이 나타난 것은 국채 시장이다. 31일 국채 3년물 금리가 0.6bp(=0.006%p) 하락한 1.444%를 기록했다. 국채 10년물 금리도 1.793%를 기록하며 발표 이후 사흘째 1.8%대를 밑돌았다. 양적 완화 공약이 총선 이후 최소한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를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해석되면서다. 금리 인하에 대비해 미리 국채 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도 보이지 않는 영향이 감지된다. 올 들어 부동산 시장은 실거래가 사라진 ‘거래절벽’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담보부대출의 원금 상환 기간을 단축하는 등 시장을 조였기 때문이다. ‘주택대출상환 20년’ 구상은 이런 부동산 시장에 상당한 기대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 살 돈 대출해 주고 2~3년 내 갚으라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는 강 위원장의 발언도 부동산 시장을 꿈틀대게 한 ‘워딩’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렇게 예민한 양적 완화 공약이 애매모호하게 걸쳐 있다는 점이다.

경제부처와 한은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한국판 양적 완화는 새누리당 당론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강 위원장의 발표가 있었던 당일 입장이었다. 한은도 부정적이다. 정치권이 발권 기관인 한은의 역할을 공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현행법상 한은이 산은 채권과 주택담보 대출 증권을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한계도 얘기되고 있다. 한은의 입장은 지금까지도 부정적이다.

한국판 양적 완화 공약은 한국 경제의 기본을 흔드는 구상이다. 고속도로 한 두 개 만들고, 민간 공항 두 세 개 건설하는 것보다 파괴력이 크다. 경제부처와 한은의 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미 현장에선 영향이 감지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후속 발표가 따라야 한다. 물론 강 위원장은 “공약은 행정부와 상의하고 한 것이 아니라 모를 수 있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 정도론 부족하다.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 한국판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 산은의 채권 인수나 주택담보대출증권 인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방법도 발표해야 한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한 입법 차원의 로드맵도 명쾌하게 설명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여당이다.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한 축이다. 구체화된 밑그림까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약 발표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후속 발표가 없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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