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고 상처받은 나무들, 다시 태어나다

오늘 식목일, 하남 ‘나무고아원’ 가보니

▲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하남나무고아원에서 사연을 간직한 나무 1만5천여 본을 관계자들이 정성껏 돌보고 있다. 김시범기자
나무도 사연이 있다. 

사람들을 위해 수십년간 그늘을 드리웠지만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터전을 빼앗긴 나무, 보기 좋은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갈 곳을 잃은 나무,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아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무 등등. 하남시 망월동 326의 3번지 일원의 폐천부지는 그런 나무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름하여 ‘나무고아원’이다.

 

제71회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나무고아원은 봄 맞이가 한창이었다. 입구에서 만난 아름드리 버드나무는 연둣빛 새순을 하늘거리며 산책나온 주민들을 맞이했다. 족히 100년은 넘어 보이는 이 나무는 수목외과수술을 받고 ‘인공피부’를 붙이고 있었다.

덕풍천변에 살던 이 버드나무는 덕보교 우회도로가 확장되면서 중앙분리대에 자리를 빼앗기고 반쯤 잘렸다가 지난 2002년 이곳에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3번에 걸친 외과수술과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지금은 나무고아원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가 됐다.

 

나무고아원의 시작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남 신장동 아파트단지에 버즘나무(플라타너스)를 심었지만 주민들은 꽃가루가 날린다는 이유로 가로수를 교체해 달라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에 하남시가 꽃도 피고 오래 자라는 이팝나무로 교체하기로 하면서 672그루의 버즘나무가 폐기될 뻔 했으나 하남시 공원관리과의 아이디어로 2000년 4월 폐천부지에 옮겨졌다. 덕분에 황량하던 폐천부지는 나무들의 안식처이자 아름다운 수목원이 됐다.

 

나무고아원이 조성된 이후 폐기처분 직전의 나무들이 물밀듯이 밀려 현재 46종 1만5천여본이 나무고아원으로 왔다. 돌이 많은 배알미동 한강변 일부에 솔밭으로 남았던 163그루의 소나무들은 강변도로 연장 공사로 베어질 위기에 처했다가 수차례 협상 끝에 이곳에 옮겨졌다. 

또 서울 망원동에 있던 방공포부대 신축과정에서 베어질 뻔했던 감나무, 자귀나무, 은행나무 등 13그루도 천신만고 끝에 이식됐다. 뿐만 아니라 15년 이상 정성스럽게 가꾸다가 축사를 신축하면서 조경업자에게 판매하는 대신 시에 기증한 529본의 느티나무와 건물 신축 공사로 중장비로 밀어버리기 직전에 발견돼 옮겨 온 홍단풍나무 430그루도 군락을 이뤘다.

 

이곳에서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고 건강을 회복한 나무들은 가로수나 조경수로 재사용되면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기도 했다. 미사강변길 4㎞가량에 식재된 1천여본의 느티나무가 나무고아원에서 관리되다 2007년 옮겨 심어진 나무들이다.

 

나무고아원을 둘러보던 주민 A씨(58ㆍ여)는 “버려질 위기에 처한 나무들이 조금이나마 나무고아원으로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어서 나무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고 나무를 가꾸는 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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