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새벽의 냉정한 마음’으로 투표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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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고등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 이 학교 여학생이 벤치에 앉아 울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가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우리 아빠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빠가 국회의원이 되면 솔직히 나라가 망합니다. 그렇다고 아빠가 떨어지면 우리 집안이 망합니다. 이러니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답답했다.

 

요즘의 ‘덮어놓고 출마하기’ 현상에 대한 풍자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자격도 안되는 사람이 출세욕, 명예욕에 빠져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더니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특권이나 누리며 당파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선거철이 가까워지니 ‘표’를 달라고 뛰어다니는 모습만 본 것이다. 이런 모습만 보아 오던 사람들은 ‘아, 저거 아무나 하겠구나.’하고 용기(?)를 갖고 선거판에 뛰어 드는 것일 게다.

 

19대 국회를 가장 ‘실패한 국회’라고들 한다.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적용된다면 19대 국회는 국민이 낸 세금에서 지불된 세비를 거의 반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요즘 선거철을 앞두고 거리에 나붙은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의 플래카드에는 새로운 정치판을 약속하는 내용들이 많다. ‘나는 국민의 진짜 머슴이 되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들도 금배지를 다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진짜 일꾼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 속담에 ‘아내로 맞이할 여자를 고를 때와 넥타이를 고를 때는 밤에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인간은 새벽에 가장 이성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은 새벽에 하게 되고, 옛날 어머니들은 새벽 정화수 앞에서 기도했다.

 

그러나 밤은 인간의 마음을 감성적으로 흐르게 한다. 밤에는 술도 마시게 되고 토론을 해도 감정에 흐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평생 함께 할 아내를 고르는데 있어 밤에는 자칫 감정적인 선택을 하기 쉽게 된다는 것.

 

후보자를 고르는데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새벽의 기도’와 같은 ‘이성적인 자세’라고 말하고 싶다.

 

신랑이 신부를, 신부가 신랑을 고르는 이성적 자세란 그저 달콤한 말에 빠지지 않고 그 약속의 말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흔히 실현되기 어려운 표퓰리즘은 참으로 위험하다. 당장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실현이 됐다 해도 몇 %나 됐고, 그마저도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부담을 안겨 주었는가?

 

그러니 ‘새벽의 냉정한 마음’으로 후보를 골라야 한다. 우리 지역의 숙원사업은 하늘과 땅 사이의 무지개라도 놓아줄 것 같고, 국가의 경제, 안보, 문화 등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 같은 사람, 그런 전지전능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달콤한 약속에 쉽게 넘어간다. 뿐만 아니라 ‘흑색선전’에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실제로 “누구는 이렇다더라” 하는 식의 흑색선전, SNS상의 그릇된 정보에도 약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있다. 그 운명의 문을 열고 번영을 누리게 할 일꾼-진정성 있고 애국심 있는 일꾼을 뽑기 위해 ‘새벽의 마음’을 갖자. 정치의 수준은 곧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다.

 

변평섭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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