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해외 식당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했다. 같은 식당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남자 지배인 1명과 여자 종업원 12명이다. 북핵 실험과 관련된 대북 제재가 한 달여를 넘기면서 이뤄진 집단 탈북이다. 북한의 외화 수입 돈줄인 해외 식당이 개점 휴업상태에 돌입하면서 발생한 탈북이다. 외화 상납에 부담을 느껴온 종업원들의 집단 결행이라고 통일부는 해석했다. 제2, 제3의 해외 식당 탈북이 이어질 수도 있음이다.
통일부는 탈북자들의 신상은 물론, 근무했던 식당의 소재 국가 등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와 해당 국가와의 외교 마찰 등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다음날 여러 언론이 자체 취재를 근거로 탈북자들이 근무했던 식당의 소재지를 중국이라고 공개했다. 한 발 나아가 단독 취재라고 밝힌 한 방송사는 중국에 있는 한 식당의 실명까지 밝혔다. 자칫 탈북자들의 신상과 얼굴이 모두 공개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려스럽다.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통일부의 처신이 이해하기 어렵다. 발표 첫날 탈북자들이 짐꾸러미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사진 속에는 주변 지형 등이 함께 촬영돼 있다. 이어 언론의 취재 경쟁이 과열되면서 식당 소재 국가에서 식당 실명까지 모두 공개됐다. 목숨을 걸고 결행한 13명의 탈북에 이런 공개와 취재가 꼭 필요한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탈북자들을 향해 극도의 적개심을 드러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는 ‘유다들의 명줄’이라는 8분여 길이의 영상에서 탈북자들을 “조국을 배반하고 적대 세력들의 반공화국 인권모략 소동에 적극 편승해 입에 피를 물고 날뛰는 21세기 유다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명백히 말하건대 이런 유다들을 끼고 벌이는 적대 세력들의 반공화국 모략소동은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성을 잃은 김정은 정권이 탈북자들에 대한 테러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우리민족끼리TV는 이번 비난 성명에서 남측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자 단체 대표들을 사진과 함께 실명 거론했다. 일종의 표적 위협을 가한 셈이다. 대책이 필요하다. 경찰과 관련 정보기관의 탈북자 신변 보호 시스템을 긴급 점검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탈북자의 신변을 위협하는 불필요한 취재 경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1997년 김정일의 처조카인 탈북자 이한영씨가 집 앞에서 피살당했다.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다. 그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은 경찰과 언론에 있었다. 탈북자 신변 보호 업무를 소홀히 한 경찰의 잘못이었고, 탈북자를 언론의 상품으로 삼았던 일부 언론의 잘못이었다. 또다시 그런 잘못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러면 안 된다. 탈북자 홍보보다 중요한 것은 탈북자 보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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